올 1분기 국내 제약업계에서 기술반환 소식이 잇달아 발생했지만 업계에서는 기술반환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올 1분기 국내 제약업계에서 기술반환 소식이 잇달아 발생했지만 업계에서는 기술반환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올 들어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잇달아 기술반환을 통보받았다. 일각에서는 기술반환을 악재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업계는 파트너사의 전략 변경이나 시장성 재평가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오히려 재정비 기회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총 4건의 기술반환이 발생했다. 기술반환 통보를 받은 기업은 유한양행, 대웅제약, 노벨티노빌리티, 티움바이오 등이다.

유한양행은 2019년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한 대사 이상 지방간염(MASH) 신약 후보물질 YH25724에 대해 지난 6일 개발 중단 통보를 받았다. 당시 계약 규모는 8억7000만달러(약 1조50억원)다. 기술반환 사유는 약물 자체의 문제가 아닌 베링거인겔하임이 또 다른 MASH 신약 후보물질인 서보두타이드 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환 의무가 없는 금액은 계약금 4000만달러(약 589억원)와 마일스톤 기술료 1000만달러(약 147억원) 등 총 5000만달러(약 737억원)다.


대웅제약은 2023년 1월 중국 CS파마슈티컬스에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 베르시포로신을 기술수출했다가 지난달 28일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해당 계약은 베르시포로신의 중국 내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CS파마슈티컬스에 이전하는 내용으로 당시 계약 규모는 3억3600만달러(약 4130억원)다. 해당 반환은 후보물질의 유효성 및 안전성과는 무관하며 CS파마슈티컬스의 R&D(연구·개발) 전략 변경에 따른 것이다. 기술반환 후에도 이미 수령한 계약금 1100만달러(약 162억원)에 대한 반환 의무는 없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기술반환하는 이유는 후보물질의 유효성이나 부작용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의 전략 변경 ▲시장성 부족 ▲신약 개발 우선순위 조정 등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된다. 일부 사례에선 후보물질의 기술을 의도적으로 사장시켜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우도 있다.

"기술반환, 악재 아닌 재도약 발판"

유한양행 연구원들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유한양행
유한양행 연구원들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유한양행


업계는 기술수출이 활발해질수록 기술반환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본다. 오히려 기술반환에 따른 재정적 손실은 제한적인 만큼 기술반환을 발판 삼아 재도약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한양행은 기술반환에 대응해 자체 개발, 재기술수출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에 힘쓸 방침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바이오텍들로부터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기술을 도입한 후 물질 최적화와 공정개발, 임상 연구 등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것이 골자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기술수출은 임상부터 상업화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며 "앞으로도 기술반환에 위축되지 않고 신약 개발 및 기술수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으로 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의 베르시포로신은 중화권 외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베르시포로신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및 신속심사 제도 개발 품목으로 지정받고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임상 2상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DMC)로부터 임상 지속 권고를 받았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R&D 강화 기조를 이어가며 오픈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히 전개할 예정"이라며 "공동 R&D 모델,현지화와 기술 기반 제휴, 스핀아웃·AI(인공지능) 신약 개발 등을 통해 후보물질 파이프라인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반환은 악재로 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반환받은 물질을 자체 개발해 상업화에 성공한 사례도 존재한다. 한미약품은 2015년에 얀센에 당뇨병 신약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를 기술수출했지만 2019년 권리 반환됐다. 후보물질이 얀센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다. 이후 해당 물질을 MASH 치료제로 자체 개발해 글로벌 빅파마 머크(MSD)와 8억6000만달러(약 1조2670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