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영역. /사진제공=양주시
일영역. /사진제공=양주시


기타 둘러메고 송추계곡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청춘을 노래하던 시절의 감성이 2025년, 21년 만에 다시 운행을 재개한 '교외선'을 타고 되살아난다. 단순한 철도의 복원을 넘어, 멈췄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듯한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17일 양주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장흥 관광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다시 한번 이 지역을 수도권 대표 관광지로 되살릴 준비를 마쳤다.

고양 대곡역에서 출발해 한적한 시골 간이역들을 지나 의정부까지 하루 왕복 20회 운행하는 교외선은 잊고 지냈던 아련한 감성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른 산과 드넓은 들판, 그리고 계절의 다채로운 색감은 바쁜 도시인의 메마른 마음에 여백처럼 스며든다. 그 중심에는 문화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감성 관광지, 장흥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운행 중단 이후 긴 잠에서 깨어난 교외선은 고양 대곡을 시작으로 일영, 장흥, 송추를 거쳐 의정부까지 이어진다. 단선 비전철 열차의 느릿한 속도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이동 수단이 된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추억의 복원'이자 '마음의 환기'와 같다.

중간 정차역인 장흥역과 송추역은 과거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였고, 이제는 예술과 전통,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고요한 산자락 아래,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듯 정적인 간이역 '일영(日迎)'은 과거 MT 명소의 추억을 간직한 채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감성적인 사진 촬영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명장면 배경지로도 유명한 일영역은 추억의 무대이자 현재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함없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봄이 떠난 자리에 남은 마지막 벚꽃. 일영역 인근의 매내미 벚꽃길은 개화 시기가 늦어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이 벚꽃을 보낸 후에도 환한 꽃 터널을 이룬다. 양쪽으로 벚꽃 나무가 길게 늘어선 이 길은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리는 '꽃비의 길'이 된다.

이 길의 이름 '매내미'는 춘향전에서 유래한 설화도 간직하고 있다. 전설과 함께 걷는 이 길은 단순한 꽃길이 아닌, 이야기와 시간이 머무는 길이다.

벚꽃길의 끝에는 남경수목원이 기다리고, 물길과 꽃길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봄 그림처럼 다가온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그 길을 걷다 보면 계절의 끝에서 계절의 시작을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쉬운 봄을 좀 더 붙잡고 싶은 이들 혹은 이미 진 벚꽃이 아쉽기만 한 이들이라면 지금이 바로 '매내미 벚꽃길'로 향할 시간이다.

장흥역에 내리면 본격적인 '예술 산책'이 시작된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네 곳의 예술 명소가 기다린다.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인 청암민속박물관과 가나아트파크가 기다린다. 장욱진미술관과 길 건너엔 민복진미술관도 이곳에 자리한다. 이 외에도 장흥자생수목원은 자연 그대로의 질서 속에서 붉은 철쭉과 잣나무 숲이 어우러져 힐링의 정점을 찍는다.

감성이 차오른 여행의 마지막은 자연이 장식한다.

송추역에서 도보 15분, 북한산국립공원의 송추계곡이 시작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봉우리와 계곡 물소리 사이로 도심에서 잊고 지냈던 자연의 호흡이 다시 살아난다. 그곳엔 주말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산 코스가 펼쳐지고 그 중심에는 웅장한 자태의 오봉이 우뚝 서 있다. 다섯 개의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한 이 풍경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계곡물에 발 담그며 쉬고 나면, '맛의 거리'라 불리는 송추역 인근 로컬 맛집에서 따뜻한 시골 밥상 한 끼가 기다린다.

특히, 오랜 단골을 보유한 음식점들은 관광지 특유의 분주함 대신 정겨운 시골 밥상처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송추계곡과 북한산은 장흥 예술 기행을 자연의 여운으로 잇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 코스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교외선은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