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1~3월) 오피스텔 시장은 전세 기피 영향으로 인해 전세가격은 0.22% 떨어졌으며 월세가격은 0.49% 올랐다. 지난 4월 15일 서울시내 부동산에 오피스텔 월세 매물정보가 나와있다. /사진=뉴시스


"마음에 드는 집 찾기가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던 말이 이해돼요. 안전한 집인지가 중요해지다 보니 전월세 가격, 교통편 이런 건 이제 나중 문제가 됐어요.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는 거죠. 수도권에 내 마음에 드는 집 찾기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야 하는 게 맞는지…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줄 대통령이면 좋겠어요."


동탄에 위치한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박경준씨(가명·32)는 회사 근처에 혼자 살 집을 구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그는 지난해 말 부모님이 귀향을 결정하신 뒤 '생애 첫'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설렘도 잠시 독립할 집을 찾아다닌 3개월 동안 그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전세사기 공포였다.

"겉보기에 좋은 직장이라도 막상 고정비 지출 제외하고 나면 제가 가고 싶은 지역을 가기는 빠듯해요. 월세보단 전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전세는 불안하죠. 조금 싼 금액에 홀려서 계약서 잘못 보고 사기를 당하면 인생이 뒤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무서워요."


새로 들어올 집 주인과의 약속한 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그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최근에는 퇴근 후에 하던 운동도 그만두고 집 찾기에 전념 중이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들에서 뜨는 알람에 매번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피곤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3개월 동안 3곳의 지역에서 본 집만 40곳이 넘는다고 밝힌 박씨는 집을 방문할 때마다 정리해두는 엑셀표에 'X'만 늘어가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3만명… "조심해도 못 피하는 깡통전세, 함께 고민해줄 대통령 원해요"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 등이 지난 1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 앞에서 인천미추홀구 전세사기 일당의 대법원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일 기준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의해 인정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총 2만9540명에 달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시행 이후 약 1년11개월 만에 급증한 수치로 20~30대 청년층이 전체 피해자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깡통전세, 이중계약, 신탁 사기 등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고 피해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무엇보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가 전세사기 피해의 당사자가 된 일은 박씨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씨의 동료가 구한 신축 빌라는 저렴한 가격도 아니었고 직접 확인한 등기부등본에도 문제가 없었다. 계약 당시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매물은 집주인 명의가 쪼개진 '깡통전세'였다.


"내 주변의 일이 되기 전에는 피해자가 좀 허술했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당하는 과정을 실제로 보니 개인이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죠. 더 문제는 그 이후죠. 범죄자를 막상 잡을 방법도 잡아서도 보상을 받을 길도 녹록지 않다는 걸 아니까 더 깜깜하더라고요."

전세사기 피해자 중 공식으로 인정받은 피해자는 67.7%에 불과하다. 9500명은 요건 미충족 또는 보증금 전액 반환 가능 등의 사유로 피해사실 조차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피해자 지원을 위해 마련된 긴급 경·공매 유예, 저리 대출, 법률 상담, 임대주택 제공 등에 사용된 정부지원금은 9711억원. 전세사기 사건에서 몰수·추징보전한 범죄수익은 1163억원에 불과하다.


박씨는 아무리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도 '조금의 거리낌이 있다면' 포기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중으로 보증금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등기부등본도 직접 확인해도 여전히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많은 청년이 이미 피해를 본 뒤에야 제도적 장치에 접근할 수 있는 실정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정책이 삶을 바꾼다"… 청년이 찾는 건 현실적 해법 "정치성향도 바꿨어요"

지난 1월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5억5167만원으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사기 여파로 비 아파트 기피 현상 지속과 공급 부족으로 인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이같은 경험은 정책 하나하나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연결되는지를 체감하게 하는 계기였다고 박씨는 말한다. 지난 3개월간의 여정으로 주거 안정 정책에 대한 공약을 더 자세히 보게 됐을 뿐 아니라 기존 정치성향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박씨는 "전세사기처럼 내 생활에 직접 닿는 문제가 생기고 나니까 누가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는지, 누가 말만 번지르르한지 구별됐다"며 "출신이 전라북도다 보니 가족들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고 저도 무조건 진보 진영을 찍던 사람 중 하나였으나 수도권에서 정치성향이 다양한 친구들이랑 많이 만나고 부딪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시행된 임대차 3법이 정치 성향을 바꾸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박씨는 언급했다. 박씨는 "선의로 만든 법이었던 건 알겠으나 너무 급하게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청년들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며 "이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되고 나니 '민주당이 정말 현실을 아는 정당인가?'라는 의문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제책도 마찬가지"라며 "결국 나랏돈을 써서 급한 불만 끄고 나면 전세시장에 어떤 영향이 가든 상관없다는 소리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번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구체적으로 공약에 반영한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일하다.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이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여 비용을 회수하는 제도다. 이에 박씨는"지난해에 폐기된 특별법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데 이 피해가 재탕 공약으로 해결될 일인가"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어 "대선 때 보다 진지한 고민이 담긴 공약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박씨는 자신처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꿔줄 수 있는 후보를 찾고 있다. 그는 "집 하나 구하는 게 이토록 힘든 나라에서 최소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만큼은 지켜주는 대통령이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