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3주간 머물렀다. 치앙마이를 여러 차례 들락거렸지만, 느긋하게 머문 적은 처음이었다. 늦잠 자고 일어나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현지인인 척 어슬렁거리며 도시를 맴돌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한달살기의 성지'라 부르는지.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 인구 130만의 조용한 고도다. '북부의 영혼'이라 불리는 치앙마이는 과거 란나 왕국의 수도였다. 사원과 유적이 일상에 스며있고, 미얀마와 인도, 라오스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 바람처럼 퍼져 있다. 그래서일까. 방콕이 뜨겁게 살아 숨 쉬는 도시라면, 치앙마이는 숨을 고르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주변 도시로 향하는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경유지, 그러나 누군가에겐 돌아가고 싶은 일상이 되는 곳. 치앙마이에는 분명히 다른 속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치앙마이가 인기를 얻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저렴한 생활비다. 가성비 높은 도시로 꼽히는 이 도시에서는 월세 30~40만 원대에 수영장과 헬스장을 갖춘 조용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음식은 싸고 맛있고, 열대과일은 싱싱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가성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술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공간이 넘쳐난다. 공방, 갤러리, 핸드메이드 상점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그중 치앙마이의 캄빌리지(kalm village chiangmai)는 이름처럼 고요하고 여유로운 공간이다. 치앙마이의 건축과 예술, 크래프트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이 안에 들어가면 하염없이 머물고 싶어진다. TCDC(태국창조디자인센터)도 빠트릴 수 없다. 디자인 도서로 둘러싸인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떠나야 할 시간도 잊는다.

치앙마이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자전거 바퀴를 슬렁슬렁 굴리며 사원에 가면, 빗자루로 천천히 바닥을 쓸고 있는 동자승을 만난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낮에는 요가센터에서 몸 푸는 수련을 하고 밤이 되면 로컬 식당에서 북부 전통 국수인 카오쏘이를 먹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치앙마이는 여행보다 삶에 어울리는 도시다. 조용하고 따스하고 느리며, 다정하다. 태국을 사회학적으로 '루즈 소사이어티(loose society)'라고 부른다. 느슨하고 완만하고 편안한 사회라고나 할까. 어디에서나 들리는 '마이 펜 라이(괜찮아요)'는 마음은 평안하게 만든다.

마냥 고즈넉한 생활만 이어질 것 같지만, 시장에 가면 생생 에너지가 폭발한다. 단언컨데, 치앙마이만큼 시장에 진심인 도시는 없다. 와로롯, 므엉마이 같은 재래시장부터 매일 곳곳에서 열리는 거리 야시장, 특색 있는 플리마켓까지 종류도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주말에는 찡짜이 마켓과 참차 마켓, 코코넛 마켓, 나나정글 중 어디에 먼저 갈지 골라야 한다. 황학동 시장 분위기를 원한다면 중고용품을 판매하는 농허 시장을 일정이 꼭 넣어야 한다. 물론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올드시티의 선데이 마켓은 기본이다.


치앙마이에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이다. 시장에서 눈인사를 건네는 상인, 이름을 기억해주는 카페 사장, 길을 잃었을 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아이. 치앙마이에는 관광경찰이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지만, 이 도시의 진짜 안심은 사람들 사이에서 온다. 보이지 않는 인프라라면 바로 그런 배려들일 것이다. 단골이 아님에도 웃으며 이름을 불러주고, 어제와 같은 과일을 챙겨주는 친절은 여행자에게 깊은 신뢰를 남긴다. 낯선 땅에서 "다시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도시가 여행지가 아니라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는 무언가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았다. 조용히 살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채지형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