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시멘트로 영역을 확장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레미콘 공장에 일부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중국 시멘트 산업의 체질 전환이 한국 시멘트 산업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중국은 과거 '양적 팽창' 전략에서 벗어나 저탄소 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산업 구조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시멘트 업계가 중국의 공격적인 수출 전략과 덤핑 판매로 고전한 철강과 석유화학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남은영 동국대 교수는 지난 12일 제주 신화월드에서 열린 '3RINCs 2025'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의 시멘트 산업 고도화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한국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구조적 파고"라며 "공세는 이미 시작됐고, 더 정교하게 한국 시장을 겨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중국 시멘트 산업이 최근 몇 년간 저탄소 공정 개발과 고강도·고내구성 제품 개발에 집중하면서 빠르게 경쟁력을 높여왔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산업 재편 과정에서 기술 고도화와 친환경 전환을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산업 재편에 따라 중국 내 과잉 물량은 수출로 전환되고 있으며 클링커 기반의 고탄소 시멘트 제품이 저가로 대량 수출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국제 시멘트 시장의 가격 질서를 교란하고 수입국의 산업 기반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동남아시아와 중동 시장에서는 중국산 저가 시멘트로 인해 자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고 도산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남 교수는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중국산 시멘트가 대규모로 한국에 유입될 경우 국내 기업의 채산성은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 클링커 수입이 늘어나면 고탄소 제품의 국내 점유율이 높아져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도 역행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탄소 이력 추적이 어려운 점도 정책적 사각지대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시멘트 산업은 주요국 대비 정책적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 국내 친환경 시멘트 인증 기준이나 공공 조달 우대 기준이 미비한 상황에서 중국산 시멘트 수입이 확대될 경우 사실상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다.

남 교수는 "외부 가격 충격에 따라 산업이 무너지면 단순히 시멘트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친환경 산업 전반으로까지 악영향이 확산할 수 있다"며 "시멘트 산업은 요소수 사태처럼 외부 의존도가 높아졌을 때 국가 기반이 마비될 수 있는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시멘트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건설 및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뿐만 아니라, 국내 폐기물 순환 시스템에서도 핵심 축 역할을 담당한다. 전국의 시멘트 공장은 슬러지, 폐타이어, 산업용 섬유, 가연성 생활 쓰레기 등을 대체 연료로 활용해 자원순환과 탄소 저감에 기여하고 있다.

중국산 시멘트 유입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친환경 인증 기준의 수입품 적용 ▲공공조달 시 국산 우대 기준 도입 ▲국내 기술 고도화를 위한 세액공제 및 R\&D 투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저탄소 시멘트 인증제를 수입 제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비관세 장벽'을 통한 산업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수소 기반 소성로, 대체 원료 활용 등의 전환 기술에 대한 국책과제 연계 지원과 세액공제 등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국내 시멘트 산업의 기술력을 높이고 환경 기여도와 다른 산업과의 연계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를 놓친다면 단지 시멘트 산업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의 녹색 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