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책의 방향성과 접근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주 4.5일제를 두고 내놓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약 비교. /사진=김은옥 기자(머니S)


2003년 주 40시간, 주 5일 근무제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만 해도 "일주일에 이틀이나 쉰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노동시간의 패러다임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 4.5일제'가 이번 대선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모두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책의 방향성과 접근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 근로시간 감축이 핵심…"2030년까지 OECD 이하로"

이재명 후보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실질적 노동시간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사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장마차에서 열린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 간담회에서 노동자들과 탄산음료로 건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명 후보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실질적 노동시간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주 4.5일제 도입·확산 등으로 2030년까지 우리나라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5일 근무를 별도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대신 1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일의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 후보는 범정부 차원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지원하고 단계적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도가 사회에 정착되면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주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주 4일제 전환까지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해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기업 비용 부담 완화 대책을 약속했다.

김문수 "주 4.5일제… 총 근로시간은 유지, 유연근무 확대가 핵심"

반면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총 근로시간은 유지하돼 유연근무 확대를 통한 주 4.5일제를 제시했다. 사진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4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총 근로시간은 유지하되 유연근무 확대를 통한 주 4.5일제를 제시했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은 그대로 두고 업무 밀도 조절을 통해 삶의 균형을 확보하자는 방안이다. 이를테면 월~목요일은 하루 9시간씩, 즉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만 근무하는 방식으로 주 4.5일제를 설계했다.

김 후보가 발표한 10대 공약에는 주 4.5일제 관련 구체적인 계획이 담기지 않았지만 기존 국민의힘 정책 구상에 근거해 유사한 제도를 제안할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김 후보는 4.5일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률적 규제는 기업 자율성을 해친다"며 노사합의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역시 함께 언급하며 기업의 자율성과 효율성 확보를 강조했다.

"생산 공백과 인건비 증가 우려" vs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정책 방향이 엇갈리는 가운데 현장에서도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어 사회적 합의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사진은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고용노동 입법 설문조사 관련 노사관계 악영향을 줄 법안은 항목을 그래프화 시킨 이미지. /사진=김은옥 기자(머니S)


정책 방향이 엇갈리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경제계는 근로일이 줄어들 경우 생산 공백과 인건비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일반 사업장에서는 줄어든 근무일만큼의 공백을 메우는 게 쉽지 않아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추가 인력을 채용하거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0개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최다 비중인 34.3%가 주 4일제·주 4.5일제를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입법으로 꼽았다.

경총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주 4.5일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업의 각기 다른 형편에 맞춰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끔 노사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우 인건비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일부 중소기업은 "정부 정책 결정의 부담이 기업에 전가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대기업은 해외 생산 확대나 자동화 같은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선택지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여론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 4.5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은 61%, 반대는 35% 찬성이 26%포인트(p) 앞섰다.

다만 국민 다수가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임금 보전'이다. 같은 조사에서 63%가 "근무 시간이 줄더라도 급여는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곧 생산성과 비용 문제를 우려하는 기업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임금 삭감 없이 주 4.5일제를 도입하기 위해 기업과 점진적으로 타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산업별·직종별 격차도 과제…"일방적 법제화는 안 돼"

전문가들은 '최장 근로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한국의 장시간 근로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단순히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실제 근로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사진은 지난 4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에서 류기섭 근로자 위원과 류기정 사용자 위원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최장 근로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한국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획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다만 단순히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실제 근로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법정 근로시간 한도는 주 40시간 안팎으로 비슷하지만 연평균 실제 근로시간은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의 경우 법정 근로시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이지만 연평균 근로시간은 1349시간으로 한국(1872시간)보다 약 500시간 적다.

한국의 근로시간 체계는 주요국 중 가장 경직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라는 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실제로는 이 시간을 억지로 채워 일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 4.5일제가 장시간 노동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의 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제안일 뿐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적은 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 관성을 깨기 싫어서 주 4.5일제 같은 절충안을 내세우는 것"이라며 "정작 필요한 것은 기준 노동시간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주 4.5일제는 '정직한 해법'이 아니다"라며 "기준 노동시간 단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단순히 근무일만 줄여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또 "주 4.5일제나 주 4일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규정한 법제화 없이 선언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국민의힘이 제시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논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주 52시간은 상식적인 노동시간의 최소 기준"이라며 "이를 탄력적으로 허물자는 주장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일방적인 법제화보다는 현실을 반영한 사회적 조율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근로시간 단축은 경영계의 우려를 이유로 미루거나 왜곡해서는 안 되며 기업의 생산성 논리에만 기대어 제도를 설계한다면 본질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