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 후보들의 에너지 정책 비교. /그래픽=김은옥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에너지 정책은 가장 민감한 정책 쟁점 중 하나다. 전기요금 급등과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 탄소중립 이행 압박, 정치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연이은 원전 수출 계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정책 경쟁을 부채질 했다. 전력요금 체계 개편부터 원전·재생 비중 조정, 탄소 감축을 위한 산업 전환 전략까지 에너지 정책은 국가 산업구조와 민생 물가에 직결되는 만큼 국민적 관심도 뜨겁다.


차기 정부의 과제는 에너지 트릴레마(에너지 안보·경제성·환경성)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세 후보 모두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자체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접근법은 크게 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을 내세우며 석탄화력 퇴출과 분산형 전력망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원전 6기 추가 건설과 SMR(소형모듈원전) 상용화로 원자력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에너지 안보 중심' 전략을 제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친원전·친시장 기조를 바탕으로 민간주도의 경쟁과 기술 혁신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탄소중립 경로의 분기점, 원자력vs재생에너지… '제로섬'으로 보면 안된다는 시각도

주요 대선 후보들의 원전을 둘러싼 입장 차이 비교. /그래픽=김은옥 기자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갈등은 탄소중립 실현의 효율성과 속도,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사고 및 폐기물 위험 부담 간 균형 문제에서 비롯된다. 원전은 기존 화석연료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발전 단가도 낮아 경제성과 저탄소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는다. 다만 방사능 사고의 치명성, 사용후핵연료 처리 미비, 건설·폐쇄의 장기 리스크가 뒤따른다.


비단 국내 뿐만 아니라 각국의 에너지 자원 조건, 사회적 수용성, 기술 역량에 따라 원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후보별 정책도 이러한 가치 판단에 따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원전의 위험성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한계를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되 제한적으로 원전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으로는 원전 확대보다는 재생에너지와 분산형 전력망 확대에 무게를 뒀다.


김문수 후보는 신규 원전 6기 건설과 SMR 상용화를 공약했다. 국내 원전 기술력과 안전성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전기요금 인하와 산업 경쟁력 확보의 핵심 해법으로 원전을 제시했다.

이준석 후보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되 시장 효율성과 기술 경제성을 근거로 친원전 정책 기조를 보였다. '㎾h당 풍력은 300원, 원전은 50~60원'이라는 단가 차이를 근거로 원전 확대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부 보조금 중심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다.


원자력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을 두고는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5년 임기 내 신규 원전 6기 착공은 현실적으로는 인허가 절차상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연계된 중장기 계획 차원에서 공약이 반영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평가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당시 폐지된 신규 원전 부지 고시가 큰 허들"며 "원전 확대는 착공 시기보다 국민 동의를 바탕으로한 신규 부지 확보가 관건"이라 강조했다.

경제성 논란에 대해서도 "사용후핵연료나 해체 비용까지 포함한 총비용(TCO)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국은 탄탄한 산업 생태계 덕분에 원전이 여전히 비교 불가한 수준의 경제성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나 미국은 건설비 자체가 2배 이상이지만, 한국은 운전·건설·해체까지 총괄 역량이 안정돼 있다"며 "비용 논쟁은 결국 데이터의 문제이고 객관적 수치를 바탕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저전원 vs 분산전원, 재생에너지 두고 엇갈린 해법… 수소는 '교집합'

지난해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채소2동에 태양열 집광판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에너지 공급의 다변화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은 세 후보 간 정책 노선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기후 대응을 넘어 국가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입장이다. 204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을 전면 폐지하고, 태양광·풍력 중심의 분산형 전력망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주민에게 발전 이익을 배당하는 '햇빛연금·바람연금' 모델을 통해 입지 반발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간헐성, 출력 밀도, 부지 갈등 등으로 인해 기저전원 역할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원전 우선 입장을 고수한다. 이준석 후보 역시 '보조금 중심 태양광은 비효율적'이라며 규제 완화, 효율성 재검토 등 시장 기반 실용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전면 확대할지, 보조 전원으로 제한할지를 두고 정책 방향이 갈리는 셈이다.

일각에는 원자력 기술의 탄소중립 기여 범위도 발전용 전력 생산을 넘어 산업용 열, 수소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 교수는 "전력 부문 외에도 산업 열과 수소 생산에 고온가스로 기술을 접목해 열원 전환과 수소경제 확대를 동시에 이끌 수 있다"며 "한국은 이 분야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을 진행해온 만큼 수소 생산까지 포함한 통합 에너지 전략에 원전이 기여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원전과 재생 사이에서 장기적 에너지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수소 또한 세 후보가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신에너지원이다. 이재명 후보는 도심형 수소충전소와 연료전지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김문수 후보는 수소차 보급과 수소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인다. 이준석 후보는 수소를 산업·수송 전반에 민간 중심으로 상용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요금제 논쟁에서 전력시장 개편까지… 전기요금, 누가 어떻게 바꿀까

한국전력은 올해 2분기에 적용할 연료비조정단가를 현재와 같은 ㎾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 전기 계량기 모습. /사진=뉴시스


세 후보의 공약에는 전기요금 개편 방안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몇년 간 국제 연료비 폭등으로 한국전력이 30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한 바 있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대선 정국에서 요금 인하 또는 동결 공약이 쏟아지면서 한전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후보는 지역 간 전기요금 차등제를 도입을 제안했다.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나눠서 지역 별 요금에 차등을 두는 방식이다. 생산지와 소비지의 요금을 다르게 하고, 서남해안·호남·경남 같이 재생에너지 생산여건이 좋은 지역에 더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하면 데이터센터와 전력 다소비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요금 차등화 가능성도 열린 상태다.

김문수 후보는 원전 확대를 통한 전기료 인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값싼 원전 전력을 대량 공급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반값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 를 만들기 위해 산업용 전력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후보의 전기요금 경쟁 도입 공약도 눈에 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지역별 차등 요금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히면서도,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전력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력 산업 구조개편 이슈와도 맞닿아 있다. 현재 발전 자회사들은 형식상 분리됐지만 실질적으로는 한전 산하에 묶여 있고, 송배전과 소매 판매 역시 여전히 독점 체제다. OECD 국가 중 전력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포함 3개국에 불과해 요금 혁신과 서비스 개선이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이 민영화를 통해 전력 공급비용을 줄인 대표적인 사례국이다.
다만 시장 경쟁이 항상 소비자 후생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유럽 에너지 위기 때 영국에서는 수십 개의 소형 전기판매회사들이 도산하며 정부가 요금 상한제를 도입했고, 텍사스주는 한파로 전력 도매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천문학적 요금 고지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시장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규제 장치와 공적 안전망이 반드시 병행돼야 하는 과제도 따른다.

눈여겨볼 점은 전력시장 개편이 단순히 요금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과도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한전 독점 체제로는 분산형 에너지 전환과 요금 합리화 모두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전력 다소비 산업을 지원하려는 목소리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자는 요구를 조화하려면 전력판매 부문의 민간 참여와 독립 규제기구 설치 등의 종합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