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휴 작가(NHN링크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몇 년 전 이야기를 완성해 놓은 단편영화가 하나 있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한 한국인 커플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공연에 더 몰두하느라 계속 미뤄뒀는데, 더 늦기 전에 이 영화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관왕의 영예를 안은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42) 작가는 13일 국내 언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단편영화 제작에 대한 꿈을 밝혔다. 그는 또 토니상의 주인공이 된 소감, 윌 애런슨 작곡가와의 파트너십 유지 비결, 향후 계획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음은 박천휴 작가와의 일문일답.


-'어쩌면 해피엔딩'이 국내외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해피엔딩’은 저와 윌 애런슨이 함께 만든 첫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이 없는 세계와 캐릭터들을 온전히 처음부터 만드는 일이 무척 즐겁기도, 두렵기도 했다.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히 모르겠다. 처음 쓰기 시작한 2014년부터 지난해 가을 브로드웨이 개막까지, 계속해서 다듬으며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게 이유라고 생각한다.


-윌 애런슨 작곡가와 오랜 시간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한국에서는 윌을 '작곡가'로 호칭하지만, 윌은 지금껏 계속 저와 함께 극작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저희 둘 다 'writer 작가' 즉 '쓰는 사람'이라고 호칭한다. 비록 제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함께 이야기를 짓고, 음악의 정서와 질감을 정하고, 매일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협업한다. 협업자이기 전에 17년째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에 비슷한 면이 많다.


-브로드웨이 공연이 한국 공연과 다른 점은.

한국은 무대전환이 거의 없는 반면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매우 많은 무대전환과 효과가 쓰인다. 한국보다 배우의 숫자와 오케스트라의 악기 숫자 등이 조금씩 더 늘어났고, 한국 버전에는 암시만 되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을 브로드웨이 버전에선 추가하기도 했다. 반대로 축약되거나 생략된 대사와 넘버도 있다.

박천휴 작가(왼쪽)와 윌 애런슨 작곡가(NHN링크 제공)


美 관객에게 받은 가장 큰 칭찬

-기억에 남는 현지 관객의 반응이 있다면.

어느 미국인 관객이 뉴욕으로 혼자 휴가를 오면서 10개의 공연 티켓을 예매했고, '어쩌면 해피엔딩'이 다섯 번째 공연이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집에 있는 아내가 그립고, 함께 손을 잡고 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결국 남은 다섯 개의 공연 표를 팔고, 아내를 좀 더 일찍 보기 위해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아내와 함께 뉴욕에 와 다시 이 공연을 함께 보기로 했다는 글을 읽었다. 제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으로 느껴졌다.

-토니상 수상 당일 어떤 하루를 보냈나.

미국 영화계처럼, 공연계에도 '어워즈 시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영화계가 비평가상, 에미와 골든글로브를 거치고 결국 피날레를 오스카 시상식에서 장식하듯, 공연계 또한 비평가상, 드라마 리그와 드라마 데스크를 거쳐 토니 어워즈까지 거의 석 달에 가까운 '어워즈 시즌' 동안 무수히 많은 행사와 시상식에 참석하며 부지런히 작품을 홍보해야 했다. 토니 어워즈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석 달 동안 뛴 마라톤의 피니시라인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토니상 수상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명의 창작자로서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긴 마라톤 같았던 서울과 뉴욕에서의 '어쩌면 해피엔딩' 작업 여정을 좀 더 뿌듯하게 마무리한 것 같아 기쁘다.

-'어쩌면 해피엔딩' '고스트 베이커리'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은 이유는.

작가로서 제게 가장 친숙한 세상과 정서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이유였다. 25세에 미국 유학을 갔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영어를 할 때 종종 한국식 악센트가 나온다. 저와 윌이 만든 '일 테노레'의 1930년대, '고스트 베이커리'의 1970년대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질감의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고, 해외 관객들에게는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세상을 선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9일 오전(한국 시각)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음악상(Best Score)과 각본상(Best Book of a Musical)을 받은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이 활짝 웃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수영 기자


빠른 성공 원한다면 창작자는 좋은 직업 아냐

-작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그저 어떠한 이야기를,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과 의지가 계속되는 한 꾸준하고 진중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거의 50:50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두 문화와 언어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조금은 다른 관점이되, 많은 분께 공감을 끌어내고 의미가 있을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공연을 만드는 일은 평균적으로 5년 이상은 걸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긴 시간 매달려야 하는 일이다. 반면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훨씬 더 보잘것없는 게 현실이다. 빠른 성공을 위해 뛰어들기에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창작진들이 쉽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와 음악을 써서, 진정성 있는 제작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버틸 수 있는 과정이다. 응원하겠다.

-10월, 10주년 공연을 기다리는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극장이 조금 더 큰 무대로 바뀌면서 시각적인 요소들에 필요한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또 과거에 함께했던 배우분들이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갖고 있다. 저와 윌뿐 아니라, 그간 이 작품의 여정을 함께해 주신 분들, 그리고 10년 동안 응원해 주신 관객분들에게 행복한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애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