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털루 전투 (출처: William Sadler, 181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15년 6월 18일,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벨기에 워털루 평원에서 영국군과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약 100일 전 엘바 섬 유배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다시 프랑스의 황제로 복귀한 나폴레옹은 유럽 열강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은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해 나폴레옹에 맞섰다. 워털루는 이들의 숙명이 교차하는 최후의 격전지가 됐다.

전투 당일, 폭우로 진흙탕이 된 전장은 나폴레옹의 포병 화력 운용에 차질을 빚게 했다. 그는 공격 개시 시간을 늦춰야 했고, 이는 연합군에게 전열을 정비하고 추가 지원군을 기다릴 시간을 줬다. 나폴레옹의 총명함과 결단력이 흐려졌다는 평도 뒤따랐다.


오전부터 시작된 전투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나폴레옹은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다. 그의 자랑이던 기병대의 무모한 돌격은 보병과 포병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이루어져 오히려 큰 손실을 입었다. 결정적인 순간, 프로이센의 블뤼허 원수가 이끄는 병력이 전장에 합류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연합군에게 기울었다.

프랑스 황제 근위대의 마지막 돌격마저 영국군 근위사단의 일제 사격 앞에 무너졌다. 프로이센군의 협공이 시작되자 나폴레옹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패주했다. 이로써 나폴레옹의 재집권은 100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는 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로 다시 유배됐고, 결국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워털루 전투의 패배는 나폴레옹 시대를 완전히 종식하고 유럽의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또한 영국은 이후 100여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는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워털루'라는 단어는 이후 '결정적인 패배'를 의미하는 관용어가 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