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육아휴직 OK, 외출은 NO"… 기저귀 교환대 찾는 아빠들
이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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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위에서 기저귀를 교체한 적도 있어요."
생후 12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재현씨(가명·30대)는 육아휴직 10일 차 아빠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이씨는 육아 전반을 담당하며 쇼핑몰과 키즈카페를 자주 찾는다. 모두 아이와 유대를 쌓기 위한 외출이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자주 직면한다. 바로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다. 이씨는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대변기 칸이나 차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씨가 언급한 기저귀 교환대 부족은 남성 육아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27일 정부 공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에 등록된 개방 및 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30%)에 불과하다. 이 중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은 575곳이다. 남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은 23곳에 불과하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모든 취업자에게 육아휴직 보편화를 공약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성별과 관계없는 육아 참여를 꾸준히 강조해 왔다. 실제로 남성 육아휴직은 꾸준히 늘었다.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중 남성 비율은 2020년 전체 24.5%에서 2021년 26.3%, 2022년 28.9%, 2023년 28.0%를 기록했다.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 남성의 비중은 34.8%로 역대 최고치다. 육아휴직급여 수급자 10명 중 3명꼴로 남성인 것에 반해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인식과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아내 없이 나오는 건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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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남성 육아 인프라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았다. 따뜻한 날씨 속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나온 아빠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른 가족과 공원을 방문한 직장인 A씨(30대)는 "아직 아빠 혼자 외출하는 건 어렵다"며 "대부분 아내와 함께 외출하는 날에 맞춰 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한번은 수유실이 여자 화장실 안쪽에 있어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며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는 기본적인 일이 남성에겐 장벽"이라고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공원을 찾은 프리랜서 B씨(40대)는 "그래도 공원이나 쇼핑몰 같은 곳에는 시설이 잘되어있는 편"이라며 가족 화장실을 이용했다.
가족 화장실은 엄마와 아빠 등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입구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유아차 진입이 수월하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위치한 가족 화장실의 내부에는 키 높이 세면대, 토끼와 곰 모양 거울이 마련되어 있었다. 기저귀 교환대는 물론 아이들을 앉힐 수 있는 접이식 영·유아 거치대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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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양육자들이 입을 모아 외출하기 좋은 장소로 꼽은 곳은 대형 쇼핑몰이다. 이날 기자가 찾은 여의도 IFC몰은 육아 친화적인 시설을 구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층마다 가족 화장실이 마련돼 있고수유실과 기저귀갈이실 등 다양한 육아 인프라를 볼 수 있었다.
2세 남아를 키우는 직장인 C씨(30대)는 "아이와 외출할 때는 마트나 쇼핑몰로 향한다"며 "최근 지어진 쇼핑몰이 아니라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아내와 쇼핑몰을 찾은 D씨(30대)는 "아이가 혼자 화장실을 가지 못해서 힘들다"며 "대형 몰에는 아이와 함께 편하게 쓸 수 있는 가족 화장실이 있어서 좋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육아는 성 역할이 아닌 공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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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인프라 부족만큼이나 남성 양육자들이 호소하는 또 다른 문제는 '정보 부족'이다. 각 지역에서 활발히 운영되는 맘카페나 육아 오픈채팅방은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여성임을 인증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많다. 남성 양육자에게는 정보 공유와 고민 나눔의 통로가 사실상 차단된 것이다.
엄마들의 동네 육아 친구 찾기 앱인 '육아크루'를 이용하는 E씨(30대)는 "어쩔 수 없이 엄마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방문한다"며 "아빠들을 위한 정책이나 커뮤니티는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서강대 신학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김진욱 교수는 "아빠들도 스스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돌봄권 현실화 정책이 필수"라며 "사회적 인프라 개선과 함께 아빠들의 돌봄 커뮤니티 활성화와 함께 아빠와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원책을 고민할 때 당사자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아빠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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