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1세기형 달러라이제이션의 등장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인 디지털 금융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Chainanalysis 등 다수 기관에 의하면2024년 말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20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2025년에는 4000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 세계 870만 개 주소가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97.1%가 USDT, USDC, DAI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한 디지털 화폐 생태계에서 선점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급성장은 기존 금융체제에 대한 근본적 전환 압력을 반영하며, 특히 비기축통화국들에는 통화주권에 관한 심각한 도전과제를 제기한다. 과거 국경 없는 역외달러 시장인 '유로달러'가 세계 금융을 지배했듯이, 이제 블록체인 위에서 운영되는 '디지털 달러'가 그 패권을 이어받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연간 거래량은 27.6조달러로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2024년 거래량을 합친 것을 넘어섰다. 이는 21세기형 '달러라이제이션'의 실질적 구현이며, 그 속도와 파급력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2. 새로운 금융 생태계의 현실적 위협
인터넷 연결만으로 누구나 달러를 손쉽게 보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대한민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 수요는 순식간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실제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일반 근로자들이 급여를 받자마자 즉시 USDT나 USDC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인플레이션 회피와 부의 저장,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거래를 위한 현실적 선택이다.


한국이 비교적 견조한 금융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디지털 달러라이제이션'이 심화될 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 효과는 반감되고, 정부 정책의 파급력은 제한될 것이다. 화폐 발행을 통한 국가 고유 수입(시뇨리지)은 줄어들며, 최악의 경우 '디지털 뱅크런' 사태로 금융 시스템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3. 각국의 대응과 한국의 과제
놀랍게도 중국은 2014년부터 디지털 위안화(DCEP)를 도입해 현재 1억 명 이상의 개인 사용자와 1000억위안 이상의 거래 규모를 달성했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결제를 받는 모든 상인들이 DCEP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도록 법제화했다. 이는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자,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핵심 요소다. 동시에 중국은 홍콩, 태국, UAE와 함께 다중 중앙은행 디지털화폐(m-CBDC) 브릿지 프로젝트를 통해 국경 간 결제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개별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통화 주권 방어 전략의 참고할 만한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도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행은 더 이상 지체 없이 디지털 원화(CBDC) 도입을 위한 제반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가 보증하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디지털 화폐를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민간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를 우리 시스템 안으로 유도해야 한다. 또한 엄격한 규제와 투명한 감독 하에서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하여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수요 기반을 새롭게 확보해나가야 한다.

나아가 개별적으로는 한계가 있는 통화주권 확보를 위해 역내 국가들과의 '디지털 통화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유로화의 경험을 참고하되, 각국의 상이한 경제 상황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현실적 과제를 고려하며 역내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장기적 전략도 병행되어야 한다. 중국의 m-CBDC 브릿지 프로젝트처럼 동아시아 국가들 간 디지털 화폐 상호 운용성을 높이는 협력 체계 구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4. 신뢰 기반 경제 생태계 구축
결국 화폐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튼튼한 경제 생태계와 직결된다. 디지털 달러라는 거대한 변화에 휩쓸려 통화주권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시장의 도전에 나서기 전에 일반 국민에게 공정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통화주권의 근거는 우리 자체의 경제활동에서 얻어지므로 금융혁신도 우리 포괄적 경제활동의 근저에 밀착된 신뢰 확장 전략부터 구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경제활동을 인식할 수 있는 토큰을 활용한 토큰경제의 기반을 규제 사각지대에 가려진 소외 및 첨단 분야부터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으로 창출하고 유통시켜, 디지털 달러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자체 수요를 발굴해야 한다. 한국도 CBDC 도입과 함께 디지털 금융 인프라 고도화, 블록체인 기술 표준화, 국제 협력 체계 구축을 통해 경쟁력 있는 디지털 화폐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21세기 통화주권 확보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공필 디지털 금융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