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무력한 중대재해처벌법… "3년째 제자리, 합수단 등 설치 필요"
국회입법조사처 첫 입법영향분석 결과, 사건 73% '수사 중'… 집행유예율 85.7%·평균 벌금 7000만원 수준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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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현장의 법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기엔 무력하다는 분석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국내 최초로 실시한 입법영향분석 결과 전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70% 이상이 여전히 '수사 중'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처벌 강도 또한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 시행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입법 취지는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분석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접수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125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조사처는 "입법 3년 차가 되도록 법 시행의 목적이었던 산업재해 감소 효과와 책임자 처벌의 적정성 등 법의 취지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재해 감소 효과?… "5~49인 미만 사업장만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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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산업재해는 전반적으로 줄지 않았다. 사업장 규모별(50인 이상, 5~49인 미만, 4인 이하)로 살핀 결과 재해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고 사망자 수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5~49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망률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법 시행의 효과가 나타난 분야는 경영자의 안전보건 인식 제고와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개선이었다. 실제로 관리체계가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례분석과 설문조사 결과도 확인됐다. 하지만 중대재해의 배후 요인인 노동강도는 거의 변함이 없었고 노동조합이 안전보건 관리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 변화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 지연'이 법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됐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동안의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검찰 수사 처리 속도는 ▲10일 이내 0% ▲3개월 이내 5% ▲6개월 이내 30%에 그쳤다. 6개월을 초과해 처리된 비율은 고용노동부 50%, 검찰 56.8%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높은 무죄율과 집행유예율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의 무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3.1%)보다 3배 높았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47건의 평균 형량은 1년1개월에 불과했으며 이 가운데 42건(85.7%)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는 일반 형사사건 집행유예율(36.5%)보다 2.3배 높다.
유죄 형량과 낮은 벌금 수준도 허점으로 꼽힌다. 유죄 판결 49건 가운데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 평균 1년1개월에 그쳐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하한선(1년 이상)에 근접했다. 법인 벌금 역시 50건 중 20억원을 선고받은 예외적 사례 1건을 제외하면 평균 7280만원에 불과했다.
개선 과제… "경제적 제재·합리적 양형기준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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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조사처는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네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현행 법 규정을 보완할 수 있는 시행령·관련 규정의 정비다. 조사처는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인을 법 집행자의 의지 부족과 불명확한 규정에서 찾았다. 입법조사처는 "시행령 제4조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규정이 모호하고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양형기준 역시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해 장기간 '수사 중' 상태에 머무르는 사건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이를 위해 전문성을 갖춘 '중대재해 합동수사단'(가칭)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의 질적·양적 확대와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이밖에 조사처는 검찰·경찰·고용노동부의 협력 체계가 구축된다면 수사 지연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형사처벌 외에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경제적 불이익, 제도적 인프라 지원 방안을 함께 고려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조사처는 "현재 기업들은 형사처벌에 대응하기 위해 서류 중심의 형식적 준비나 외부 전문가 자문, 법적 대응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실질적인 예방 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경제적 제재 또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인 경제적 제재 방안으로는 매출액·이익 연동 벌금제와 재산 비례 벌금제를 제안했다.
넷째는 합리적인 양형기준 마련이다. 현행 평균 벌금액은 7280만원, 평균 형량은 1년1개월 수준으로 법정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단순한 형사처벌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안전 투자를 확대하고 사회적 비용 분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어도 평균 벌금이 7000만원대에 불과한 현실은 입법 취지를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누적된 '수사 중'(73%) 사건의 조속한 처리가 시급하다. 검찰·경찰·고용노동부가 협업하는 '중대재해처벌법 합동수사단'(가칭) 설치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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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