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⑦[르포] 유럽서 최단기 안정 이룬 SK온 비법 보니
[광복80주년, 세계를 누비는 대한민국 下] 첨단 기술과 문화 이해의 조화…3개월 램프업 신화
이반차=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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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산업이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지 80년. 그 사이 한국 기업들은 국내에서 협력사와의 상생, 인재 육성으로 산업 생태계를 다지는 한편, 유럽·미주 등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가며 글로벌 경쟁의 최전선에 섰다. 머니S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업 현장을 찾아 국내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과 세계 시장에서 더욱 크게 도약할 기회를 함께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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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중국 같은 아시아권 문화에는 소위 '까라면 까' 식의 상명하복 문화가 있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국 기록적인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지난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국제공항에서 남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SK온 이반차 공장. 축구장 98개 크기(약 70만㎡)의 거대한 '배터리 요새'에서 만난 김자훈 제조관리팀장은 이반차 공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개인의 삶과 가족을 중시하는 유럽 문화는 일사불란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한국 제조업에겐 낯선 벽과 같지만 SK온은 이곳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을 썼다.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 신규 공장의 수율 안정화(램프업) 기간을 불과 3개월로 단축한 것이다.
연간 30GWh를 생산하는 유럽 최대 규모 공장이 불과 3개월 만에 램프업에 성공한 것은 본사도 놀란 성과였다. 김 팀장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안정화했는지 본사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정도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비결은 현지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적합한 시스템 구축에 있었다. SK온은 2020년부터 인근 코마롬 지역에서 1·2공장을 운영하며 약 6년간 유럽 시장의 특수성을 체득했다.
김 팀장은 "초기 유럽 공장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약이 됐다"며 "5~6년간 운영하며 쌓인 노하우 덕분에 인력의 편차가 있더라도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거대한 공장 내부에 오가는 사람이 의외로 적었다. 오후 4시 30분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한국 공장의 퇴근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이반차 공장은 먼저 지어진 코마롬 1·2공장보다 규모는 크지만 직원 수는 더 적다.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한 시스템을 만든 덕분이다. 초기 비용 부담이 크지만 중·장기 성과를 감안한 과감한 투자의 결과이기도 하다.
거대한 물류 창고에선 마치 쿠팡 물류센터처럼 로봇이 자동으로 제품을 입출고한다. 공정 간 반제품 이동은 무인 운반 로봇(AGV)이 담당하고 AI 기반의 비전 검사 시스템이 미세한 불량까지 잡아낸다. 이는 반도체 공정에 적용되는 첨단 시스템이다.
수작업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춰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작업자의 숙련도나 컨디션에 따른 품질 편차를 원천 차단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시스템이 공장을 24시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셈이다.
견고한 시스템과 기술만으로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SK온은 현지 인력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장거리 출퇴근을 기피하는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수도인 부다페스트를 포함한 인근 지역까지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역 도시환경 개선은 물론 소방·의료장비, 취약계층 생필품, 고등학교 및 대학교 장학금 전달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지난해 말 'SK ut'(SK도로)가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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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SK온의 유럽 거점으로 이반차 공장의 역할을 커질 전망이다. 현재 이반차 공장 옆 공터는 비어있지만 전기차 캐즘이 완화되면 2단계 증설에 돌입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유럽 시장 지배력을 한층 더 공고히 하고 미래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SK온이 주력하는 파우치형 이외에 원통형과 각형으로 폼펙터를 다변화할 계획도 있다. 김 팀장은 "배터리 폼팩터 전환 시간은 제품, 공장, 고객 사양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기존 설비를 활용하기에 신규 라인 증설보다 훨씬 빠르다"며 "회사는 기존 파우치형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폼팩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쟁사들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높은 수준의 안정화를 이뤄내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면서 "이반차 공장은 우리가 유럽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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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차=최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