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산업은 중소형 벌크선, 유조선, 컨테이너선의 수주를 포기하고 있다. 선가가 낮고 기술의 보편화가 이루어져, 중국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대신 선가와 수익성이 높은 LNG선 및 대형선 건조에 치중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2월 기준 국별 조선소 벌크선 수주 척수를 보면 중국이 936척, 일본이 352척인데 비해 한국은 1척에 불과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선박이 바로 이 중소형벌크선, 유조선, 컨테이너선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 중소형 선박은 전쟁 등 유사시 화물수송의 핵심 선박이다. 현재 이 선박들은 국내 조선소 대신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조선소와 협업해서 추진해야 하는 해운선사들의 친환경선박 건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전쟁 등 유사시 중국건조 선박으로 전략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문제점을 발생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보다 각종 물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대신 자국 조선소에서 벌크선을 건조하는 등 일본 해운사가 필요로 하는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또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해운·조선산업의 과다한 지배력을 경제 및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자국 조선산업의 부흥을 위한 해운 및 조선산업의 전략산업화를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미국이 국제경쟁력이라는 잣대로만 미국 해운과 조선업을 포기한 결과 중국해운 및 조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것이 미국 경제와 해양 기반의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라 보여진다.

미국은 조선산업 부활을 위해 동맹국인 한국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고, 우리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상선대 및 조선산업 부흥(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을 위해 약 200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8월 26일, HD현대는 미 상무장관과 한국의 산업통상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에서 미국 사모펀드사인 서버러스 캐피탈 및 산업은행(KDB)과 수십억달러의 투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미국 조선소의 인수 및 현대화, 공급망 강화를 위한 장비 및 부품 공급업체에 대한 자본 투자, 자율 운항 및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 조선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라 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한화필리조선소 방문에 맞추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자인 한화해운은 LNG선 1척과 10척의 유조선 등 총 11척을 한화 필리조선소에 발주한다고 발표했다. 한화해운이 필리조선소에 발주한 LNG선은 두 번째이며, 지난달 첫 번째 LNG선 발주는 원양선박으로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조선소에 발주한 것이었다. 미국의 한화 필리조선소가 이 정도 규모의 선박 건조야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한화오션에서 대부분 건조될 예정이며,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한화해운이 작년에 한화오션에 발주한 2척의 LNG선 건조에 필리조선소 직원들을 참여시켜 경험을 쌓게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 필리조선소의 현재 생산규모를 연간 2척에서 20척으로 확대하기 위해 필리조선소에 약 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의 조선산업은 야드와 기술 그리고 인력기반까지 붕괴된 상태이다. 미국의 조선산업 회복을 위해 한국의 조선산업에 구애하는 이와 같은 눈물겨운 노력은 아마 10년 후 우리에게도 닥칠 상황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중국과의 조선산업 국제경쟁력을 시장 논리대로 바라만 본다면 우리나라도 몇 년 내 미국처럼 모든 선박건조를 중국에 내줘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과 조선산업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부터 국적선대 유지와 조선업 발전을 위한 전략적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해운과 조선산업의 전략적 대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토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이 중국 상선대와 조선의 독주에 견제하기 위해 우리 조선산업에게 요구하는 포인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소형 벌크선, 유조선, 컨테이너선도 국내건조가 가능하도록 대응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조선산업은 주요 수출산업이지만 동시에 국가해양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선종과 선형의 자국 상선대 건조 능력을 전략적으로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및 식량 등 전략물자 수송, 무역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급망 유지를 위해 해운과 조선의 역할에 제대로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지, 해운과 조선의 부족한 인력을 위한 교육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산업부와 해수부로 나뉘어져 있는 조선과 해운정책의 협력 및 연계를 다루는 정부 책임기관은 어디이며, 누가 담당해야 하는지, 또한 수혜자인 화주나 군과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암모니아, 메탄올, 수소와 같은 친환경 연료선박과 자율운항 선박 등 디지털 미래 선박의 건조에 조선소 기술력과 해운사의 운항 노하우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 등도 검토해야 한다.

해운과 조선의 연계를 통해 우리 경제와 통상, 그리고 안보에 실질적인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따져보는 일과 함께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인 중국과의 가격경쟁력 차이를 어떻게 줄여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디지털, 친환경 첨단 선박 기술개발 지원, 표준선형 개발에 조선소와 선사간 협력, 선사, 조선소, 화주, 금융사가 참여하는 선주사 도입 등을 통한 선가 절감 방안 등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조선소간 분업을 전제로 대형 조선소와 중소형 조선소간의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원가 절감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대형조선소와 중소조선소를 합병하는 수직계열화를 만들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정책과 해운정책은 주무부처가 분리되어 있어 정책 연계성을 찾기 어렵다. 조선과 해운을 국가해양력 강화와 대미 통상현안에 대응하는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정책을 연계시키고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운영이 필요하다. 조선 및 해운의 정책 일원화를 위한 정부 조직개편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동시에 산업부, 해수부, 조선해양플랜트협회, 해운협회, 무역협회 등이 포함된 해운·조선산업 민·관협력위원회 구성 및 운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