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본부장이 한미 관세협상 관련 후속 협의를 위해 지난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워싱턴 DC로 출국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를 보이면서 산업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장관급 인사들이 연이어 방미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합의에 근접한 주변국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여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 관세 협상은 현재 공회전 상태에 있다. 통상당국 수장들의 잇따른 방미 행보가 이를 방증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날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서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미국을 찾는 셈이다. 여 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만난 뒤 후속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장관도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위해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면담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난 14일 귀국했다. 3500억달러(486조원) 규모 대미 투자안을 둘러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현재 미국 측은 투자금 사용처를 정하는 재량권과 투자 이익을 미국이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 나머지는 전략 산업에 투자해야 하며 투자 이익은 미국 보유가 아닌 재투자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익에 반하는 불합리한 안에는 서명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국익 수호 원칙을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고,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 본부장도 출국 당시 "국익에 부합하고 합리적인 협상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지금은 균형적이고 공정한 협상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지난 16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협상 속도보다는 방향에 중점을 두면서 산업계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업계다. 미국이 16일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적용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한국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불리한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존 27.5% 자동차 관세에서 15%로 낮아졌지만, 한국은 미국과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당분간 25%를 적용받게 됐다.


유럽연합(EU)은 주요 품목에 대한 협상을 타결한 상태다. 이미 지난달 대부분의 EU산 수입품에 15% 관세를 적용하는 걸 골자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의약품, 목재, 반도체 등 품목 관세율도 15% 이하로 제한됐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와 최혜국대우(MFN) 관세를 합산한 관세율이 15%를 넘지 않도록 보장하는 방식이다. 관세 협상이 아직 명문화되지 않은 한국의 불안감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비롯한 양국 협력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무역 합의의 기초가 되는 관세 협상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면 새로운 사업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거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물론 양국의 실익이 걸린 문제인 만큼 협상이 장기화하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역시 협상이 길어질수록 자국 투자 유치, 제조업 재건 등 목표한 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협상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뤄내기 쉽지 않은 만큼 협상을 통해 우리나라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