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텍이 아일랜드의 우수한 인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사진은 아일랜드 스워즈의 바이오텍 공장 입구. /사진=최유빈 기자


지난 9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차로 30분 남짓, 한적한 도시 스워즈로 향하는 길은 평화로웠다. 아침 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지인들이 "일 년에 며칠 보기 힘든 행운의 날씨"라고 입을 모으는 티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라 불리며 유럽의 공업국으로 떠올라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허브가 된 아일랜드. 그 심장부 한복판에 자리 잡은 SK그룹의 바이오 유럽 전진기지, SK바이오텍 아일랜드를 찾은 날 맑은 하늘은 마치 이곳에 뿌리내린 K바이오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유럽 바이오 허브에 둥지 튼 K바이오

조너선 호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도에서 SK바이오텍 아일랜드를 가르키고 있다. /사진=김성아 기자


'웰컴 투 SK바이오텍 아일랜드'라는 안내판을 지나 사무동으로 향했다. 입구엔 SK그룹의 바이오 기지가 모두 표시된 세계지도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지도 중심에 위치한 SK바이오텍 아일랜드는 그룹의 거점 기지로 뻗어 나가기에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SK는 2018년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로부터 공장을 인수해 지금의 SK바이오텍 아일랜드를 세웠다. SK바이오텍은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기업으로, 고객사가 요구하는 약품을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SK가 유럽 바이오 거점 기지로 이곳을 택한 것은 우수한 인력과 기업 친화적인 환경 덕분이다. 조너선 호칸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아일랜드는 수십 년간 축적된 우수한 제약·바이오 인력 풀과 안정적인 인프라, 유럽 시장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최적의 전략적 허브"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12.5%에 불과한 낮은 법인세율 등 아일랜드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도 SK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호칸 CFO는 "2017년 말 공장 인수 이후 아일랜드 정부 기관들과 여러 계획들을 긴밀히 협력하며 매우 긍정적인 민관 파트너십을 경험했다"며 "주로 인력 교육 및 개발과 관련된 부분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이루어졌다"고 덧붙였다.

공장이 아닌 '사람'과 '역사'를 샀다…'신의 한 수' 된 M&A

SK바이오텍의 60주년 기념패가 사무동 벽에 걸려있다. SK는 2018년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로부터 공장을 인수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사진=최유빈 기자


SK가 BMS로부터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축적된 무형의 자산과 노하우, 그리고 숙련된 전문가들을 한 번에 확보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이다.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세계 최고 규제기관의 까다로운 감사와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신규 공장을 짓고 이력을 쌓으려면 최소 5~7년이 걸리는 일을 SK는 인수를 통해 단번에 해결하며 유럽 시장 진출의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했다.


이러한 저력의 원천은 단연 '사람'이다. SK는 공장을 인수하며 기존 BMS 소속의 고도로 숙련된 인력을 그대로 승계했다. 이들은 수십 년간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화한 제약·바이오 베테랑들이다.

사무동을 나와 공장동으로 향하자 그 활기와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며 영어와 여러 억양이 섞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이곳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임을 증명했다. 직원들 틈에 앉아 해시브라운과 주스로 아침을 해결하는 동안, 이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곧 회사의 성장 동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수한 인력을 존중하고 이들의 역량을 믿는 문화가 회사에 깊이 배어있었다.

미래 향한 투자…성장 엔진 'P2 플랜트' 가동 임박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전경. /사진=김성아 기자


SK바이오텍 아일랜드는 SK그룹의 더 큰 그림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SK의 CDMO 사업을 총괄하는 SK팜테코는 미국, 유럽, 한국을 잇는 글로벌 생산 체계를 구축했는데 아일랜드는 그중 유럽 대륙을 총괄하는 전략 기지(Strategic Hub)다.


현재 공장에서는 대규모 상업생산을 위한 P2 플랜트 증설이 진행 중이었다. 인허가 문제로 일정이 다소 늦춰졌지만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이다. 신규 라인은 일부를 먼저 설치해 가동률과 수주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확장할 방침이다.

호칸 CFO는 "BMS 시절 대형 제약사 생산기지였던 곳을 CDMO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는 추가 고객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과 인력, 설비 투자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