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클립아트코리아


#. 오래전 결혼한 A씨는 슬하에 아들과 딸을 뒀다. 아들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손녀 한 명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며느리는 일찍 재혼했고 A씨는 홀로 남겨진 손녀를 친딸처럼 아끼며 극진히 키웠왔다. 이제 연로한 A씨는 본인이 사망했을 경우 손녀가 아들의 몫을 대신해 상속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사망은 큰 슬픔이지만 그로 인해 남겨진 재산의 승계는 종종 복잡한 법적 문제를 동반한다. 특히 상속인이 될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사망했을 경우 그 자녀의 가족(손주 등)은 상속에서 어떤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일까.

우리 민법은 가족 공동체의 생활 안정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사망한 상속인을 대신해 그 직계비속이나 배우자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바로 대습상속 제도다. 대습상속이란 먼저 사망한 상속인(피대습자)을 대신해 그의 직계비속(자녀)과 배우자(대습상속인)가 상속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법리다.


사례 속 A씨는 아들을 먼저 잃고 홀로 남겨진 손녀를 키워왔다. 아들이 남긴 유일한 핏줄인 손녀가 아버지의 몫을 대신 상속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의 손녀는 아버지가 생존했다면 받았 수 있었던 상속분을 대신 상속받을 수 있다. 이 제도가 없다면 A씨의 재산은 배우자와 딸에게만 상속되고 손녀는 상속에서 제외되겠지만 대습상속 덕분에 아들의 몫이 손녀에게 이어지게 된다.

대습상속이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다음 두 가지 핵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대습원인의 발생'이 필요하다.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상속 결격사유로 인해 상속권을 잃어야 대습상속이 발생한다.


둘째 '대습자가 존재'해야 한다. 즉, 사망하거나 상속 결격인 상속인의 직계비속이나 배우자가 존재해야 한다. 이들은 대습상속인이 되어 사망한 피대습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한다.

동시사망의 경우에도 대습상속은 적용될까? 그렇다면 부모와 아들이 같은 사고로 동시에 사망한 경우에도 대습상속이 적용될까? 민법 제30조는 '피상속인과 상속인이 동일한 위난으로 사망하여 누가 먼저 사망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는 동시사망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언상으로는 '먼저 사망한 경우'에만 대습상속이 적용되는 것처럼 읽혀 대습상속이 불가능한 것인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습상속의 취지를 고려해 법 적용의 범위를 넓혔다. 즉 '상속 개시 전 사망'의 범위에 동시사망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가족 보호라는 제도의 본래 목적을 충실히 반영한 합리적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며느리의 재혼, 대습상속에 영향을 미치나. 사례에서처럼 며느리가 일찍 재혼했다면 그녀는 더 이상 법적으로 A씨의 며느리가 아니다. 며느리로서의 지위가 없어져 대습상속인이 될 수 없으며, 손녀만이 아들의 상속분 전부를 상속받게 된다.

만약 며느리가 재혼하지 않고 A씨가 사망할 때까지 법률상 배우자 지위를 유지했다면 며느리와 손녀가 함께 대습상속인이 된다. 이 경우 상속비율은 며느리(피대습자의 배우자)에게 일반 상속법리에 따라 다른 공동상속인(손녀)보다 5할이 가산된다. 따라서 며느리와 손녀는 1.5대1의 비율로 아들의 상속분을 나누게 된다.

대습상속인은 법이 마련한 가족 보호 장치이지만, 실제로는 상속인과 대습상속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대습상속인에게 법정 상속분보다 더 많은 상속분을 보장하거나, 혹은 관계 악화로 인해 상속에서 배제하고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속 분쟁을 막고 상속 비율이나 상속 재산을 명확히 지정하고 싶다면 생전에 적극적으로 상속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언(자필증서, 녹음 등)이나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상속 의사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처럼 사전 상속 설계를 해둔다면, 복잡한 법적 분쟁을 피하고, 고인의 진정한 뜻을 남겨진 가족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