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17일 회장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해 CES 2024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정 회장의 모습. /사진=HD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HD현대가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수장에 오른 정 회장은 회사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글로벌 톱티어 조선사의 입지를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HD현대는 17일 정 회장의 승진을 중심으로 하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HD현대를 이끌었던 권오갑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으며 내년 3월 주총을 끝으로 HD현대 대표이사에서 사임할 예정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 입사 16년 만에 회장에 올랐다. 2009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재무팀을 시작으로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영업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지주회사인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 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23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부터다. 그는 조선사업 외에도 정유, 건설기계, 전력기기 등 그룹 내 주요사업의 경쟁력 확보와 혁신에 앞장섰다.

부회장 승진 이후 HD현대는 새로운 비전을 연이어 내놓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정 회장은 CES 2023에서는 바다에 대한 관점과 활용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오션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을 그룹의 미래전략으로 천명했다. HD현대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에너지, 산업기계 기술력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CES 2023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기선 당시 대표가 회사의 비전을 발표했다. /사진=HD현대


이듬해엔 CES 2024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며 주목받았다. 정 회장은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 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AI와 디지털, 로봇 등의 첨단 기술이 더해진 HD현대의 사이트(Xite) 혁신은 건설 현장과 장비의 개선을 넘어 인류가 미래를 건설하는 근원적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의 경영 전략과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맞물리며 HD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룹의 핵심 사업회사인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매출 12조원을 돌파하며 적자에서 벗어났고 지난해엔 7052억원의 흑자를 거뒀다.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6조6400억원, 1조9557억원에 달한다.

정 회장은 조선과 건설기계, 에너지 등 핵심 사업 고도화에 나설 전망이다. 현재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HD현대건설기계과 HD현대인프라코어의 합병 작업이 각각 진행 중이다. 핵심 사업 역량을 한데 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관측된다.


정 회장은 경영 승계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그가 보유한 HD현대 지분율은 6.12%에 그친다. 부친인 정몽준 이사장의 보유 지분(26.6%)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올지 주목된다. 상속세는 약 8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국내외 경영 환경 속에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간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되 신-구 경영진의 조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