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욱 한국수력원자력 부사장(사장 직무대행)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의 협력 없이는 한국형 원전의 독자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사진은 황주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대욱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직무대행의 답변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전대욱 한국수력원자력 부사장(사장 직무대행)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의 협력 없이는 한국형 원전의 독자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수원이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동안 정부와 공기업이 내세워 온 '독자 수출'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전 부사장은 20일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날 국감은 체코 원전 수출 협정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통제 논란을 중심으로 한수원과 한전의 입장을 따져 묻는 자리였다.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당·경남 김해시을)은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비공개 보고서를 근거로 "그동안 한전과 한수원이 독자 기술로 수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의서 전문에 '한국형 원전은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전 부사장은 짧게 "그렇다"고 답하며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김 의원은 다시 "한수원과 한전이 미국 에너지부의 결정에 따라 웨스팅하우스와 협력을 통한 미국의 수출통제 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한국형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합의서에 명시돼 있느냐"고 확인했다. 전 부사장은 "그렇다"고 답한 뒤 "기술 독립이라는 용어를 혼용한 부분이 있었고 현실적으로 수출에 한계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한국형 원전(APR1400)이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수출이 가능하다는 기존 한수원측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날 송재봉 의원(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시청원구)은 "독자 수출이 어렵다는 사실을 언제 인지했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전 부사장은 "지난해 8월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에서 알게 됐다"고 답했다.


송 의원은 "그렇다면 지난해 8월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왜 10월에는 수출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느냐"며 "결국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전 부사장은 "그때까지 웨스팅하우스와 협의가 진행 중이었다"며 "협상 도중 공개적으로 백기투항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전 부사장은 이어 "이건 선택의 문제였다"며 "당시 이사회 일원으로서 체코 수출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법적 싸움을 이어가는 것보다, 협정을 통해 체코 수출 가능성을 확보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국내 원전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김정호 의원은 한수원이 체코 수주를 통해 유럽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홍보했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정으로 사실상 유럽 진출이 막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합의서에 따르면 체코를 제외한 유럽 시장 진출을 포기했다"며 "이미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폴란드에서 자진 철수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김 의원은 또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의 경우 협정상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웨스팅하우스가 자사 노형(AP1000)으로 입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웨스팅하우스가 사실상 협정의 정신을 위반하고 자사 기술 중심으로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이에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그 문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논의 중에 있다"고 답했다.

또 김 사장은 "이번 협정이 표면적으로는 불리해 보일 수 있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적 분쟁이라는 장애물을 해소하지 않으면 급성장 중인 글로벌 원전 시장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97년 체결된 기술사용협정(LA)이나 2010년 사업협력협정(BCA)에 비해 이번 협정이 다소 불리하게 체결된 측면이 있다"며 "그동안의 협정도 완전한 대등 관계는 아니었고 산업 발전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원전 문제 외에도 한전KDN 매각 논란이 함께 다뤄졌다. 이재관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천안시을)은 "한전이 자회사인 한전KDN을 매각하려 한 배경이 정치적 의도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 사장은 "KDN 매각 계획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지적을 받은 뒤 지난해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매각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이사들이 반대해 보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KDN 매각은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며, 정치적 이유가 개입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대왕고래' 유망구조 탐사 실패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1차 탐사 시추가 실패로 끝났지만, 탐사는 투자 과정의 일부이며 아직 중단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탐사에서 개발 단계로 넘어가려면 약 10배의 자금이 필요하다"며 "하베스트 투자 실패 사례를 교훈 삼아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규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 제주시을)은 대왕고래 프로젝트 용역사 선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사장은 "과거에는 자체적으로 결정했으나 앞으로는 규정을 세심히 살피겠다"며 "최근 마감된 해외 투자 유치 입찰에 복수의 메이저 외국계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이 탐사 실패와 정부 예산 삭감을 알고도 투자 의사를 밝힌 것은 긍정적 신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