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건설업계 최초 공인시험기관으로 지정된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은 대규모 전문 실험시설과 첨단 장비를 갖췄다. 이곳에선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사업본부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여러 연구가 이뤄진다. 사진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대형구조실험동 내부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자동차를 만들 때 컴퓨터 모델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고 실제 충돌 시험을 해 검증하듯 건설 분야도 그렇습니다. 신규 공법을 개발하면 실물 크기의 구조물을 제작해서 성능을 평가합니다."(정대기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장)


3층짜리 건물이 거뜬히 들어갈 것 같은 규모에 철제 장비들이 즐비한 풍경. 지난 17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의 대형구조실험동에 들어서자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지 면적 약 3만㎡(9000평)에 1983년 세워진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은 1994년 건설업계 최초의 공인시험기관으로 지정됐다. 대형구조실험동을 비롯해 풍동실험동·음향실험동 등 전문 실험시설과 첨단 장비가 움직이는 이곳에선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사업본부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많은 연구가 이뤄진다.

실물 실험 통해 건설 안전 검증

대형구조실험동에서는 대형 가력 장비와 반력 구조물로 실제 조건과 동일한 구조실험을 진행해 실구조물의 안전성을 검증한다.


붉은색의 'H'(에이치)형 철제 구조물은 기둥 내진 보강 공법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으로, 새로운 형태의 보를 만들 때 몇 톤(t)까지 하중을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한다. 최대 1000톤의 힘을 가할 수 있는 장비들이 거치돼 있다.

부산 가덕도와 거제를 잇는 교량터널 거가대교를 시공한 당시 이곳에서 충격하중 제어장치를 설치하고 적용 실험 등을 진행했다.
대형구조실험동에서는 가력 장비와 반력 구조물로 실제 조건과 동일한 구조실험을 통해 실구조물의 안전성을 검증한다. 사진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대형구조실험동 내 2.5m 두께 반력 콘크리트 벽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실험동 바닥은 구조물 자체 무게와 성능평가 과정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 ㎡당 약 2000t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정 원장은 "아파트 바닥 두께가 25㎝인데, 이 실험동의 바닥 콘크리트 두께는 1.5m"라며 "단층이 아니라 1m 두께 기초가 함께 타설돼 ㎡ 면적에 중형 승용차 1000대를 올려놔도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평 하중 실험을 위한 2.5m 두께의 반력 콘크리트 벽은 대형 여객기와 충돌해도 거뜬하다.

바람 특성 고려한 설계 과정

이어 바람이 구조물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평가하는 풍동실험동으로 향했다. 풍동실험동에서는 건물·교량 등에 작용하는 풍압·풍력·풍진동 등을 측정, 구조물의 내풍안전성(강한 바람에 의해 붕괴되지 않도록 설계·관리되는 안전기준)과 사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컨설팅과 엔지니어링 업무를 수행한다.


대우건설이 시공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아파트 축소 모형이 눈에 띄었다. 풍동실험동에서 만난 곽영학 대우건설 토목연구팀 책임은 "건물이 높고 커질수록 바람의 영향이 설계를 지배하게 된다"며 "실제 구조물을 축소 제작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벽 두께 등을 다시 설계해 성능 확인 실험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풍동실험동에서는 건물·교량 등에 작용하는 바람을 측정해 구조물의 내풍 안전성과 사용성을 확보한다. 사진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풍동실험동에서 방배동 아파트 바람 실험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풍동실험동은 해양, 도시 등 바람의 특성을 고려해 내부 환경을 조성한다. 3m의 거대 송풍기를 사용, 공기가 순환하도록 설계해 온도와 습도가 균일하게 유지된다. 공기 밀도 변화로 인한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실제 지형과 주변 건물 배치를 그대로 반영한 원형 모형을 제작해 10도씩 돌려 36차례(360도) 실험하고 가장 큰 하중 값을 설계에 반영한다.

곽영학 책임은 "주변 공사가 예정된 경우 현재 조건을 기준으로 할지, 개발 완료 후 환경을 기준으로 할지도 중요한 문제"라며 "경우에 따라 두 가지 환경을 실험한다. 풍동실험은 설계의 시작과 끝"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험동에서 베트남 하노이 더 랜드마크, 싱가포르 인피니언 헤드쿼터,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 등이 설계됐다.

'조용한 아파트'의 비밀

음향실험동에서는 건물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에 대한 저감대책을 세운다. 사진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음향실험동 내 무향실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음향실험동은 건축재료의 음향 특성과 소음원 파워레벨 등을 평가하는 실험시설이다. 건물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에 대한 저감 대책을 세운다. 정 원장은 "무향실에서는 말 그대로 메아리가 발생하지 않아서 장시간 있으면 어지러울 만큼 모든 반사가 억제된다"고 말했다.


무향실에 들어서자 스펀지로 만들어진 거대한 정육면체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벽과 바닥, 천장 등 온 사방이 발포 폴리우레탄 흡음재로 둘러싸여 소리의 울림이 없었다. 무선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보다 더 조용한 느낌이었다. 외부 소음이 완전 차단된 이곳에선 보일러나 환기 시스템 등 장비를 가동해 기기의 순수 소음을 측정한다.
대우건설은 스마트건설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건설산업 혁신을 가속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사진은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음향실험동 내 잔향실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반대로 잔향실은 소리가 메아리치는 공간이다. 소음을 발생시켜 인접한 공간에서 소리가 얼마큼 차단되는지 방음 성능을 확인한다. 이곳에서 아파트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바닥충격음 저감 시스템 등이 개발됐다. 이 같은 음향 실험시설을 갖춘 건설업체는 국내에서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두 곳뿐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스마트건설 기술 발전을 위한 세부 로드맵을 발표했다. 신기술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건설산업 혁신을 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원장은 "대우건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기술 혁신과 사업모델 전환의 핵심 동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기술을 통해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건설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