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미 관세 협상이 막판 교착 국면에 빠지면서 완성차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오는 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 정상회담이 관세 타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협상 지연으로 25% 고율 관세가 지속될 경우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물론 부품 공급망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관세 협상은 아직 공통 문서 작성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양국이 관세 문제를 포괄 협상 의제로 다루고 있으나 합의안 초안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APEC 기간 관세·안보·원전 분야를 묶은 포괄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막판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당초 업계는 이번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관세율 15% 인하'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직접투자 조건을 완화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선불 투자'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제시한 '간접투자 전환'이나 '분할 지급'(연 250억달러씩 8년)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불투명하다.

관세 15% 인하가 무산될 경우 완성차 업계는 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현대차는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질 경우 2026년 영업이익이 2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아도 같은 조건에서 1조6000억원 증익이 기대된다.


업계의 시선은 APEC 기간 협상 일정에 쏠린다. 오는 29~30일 열리는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에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한다. 미국 측 통상 수장들도 동행하는 만큼 실무 협상의 '마지노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북미 시장의 가격 경쟁력이 좌우된다. 관세 25%가 유지되면 현대차·기아 모두 미국 내 판매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고 토요타·혼다 등 일본 브랜드 대비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관세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기업의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는 북미 현지 생산 확대로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25% 관세 장벽이 지속된다면 이익 개선 폭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부품업계도 타격을 우려한다. 현대모비스·에스엘·만도 등은 현대차·기아의 미국 조지아 공장(HMGMA) 가동률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 관세가 현행 수준으로 유지되면 완성차의 생산·수출 일정이 지연돼 납품량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완성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우 북미 수출액 기준으로 평균 1.6% 수준의 관세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완성차의 고율 관세가 부품단가 인하 압박으로 전가된 결과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단순한 세율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한미 산업 동맹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시험대"라며 "관세율이 15%로 낮아지지 않으면 완성차는 물론 수천 개 협력업체의 투자·고용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