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고환율 상황이 단기가 아닌 구조적 고착화 상태라는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환전소. /사진=뉴스1


'구조적 고환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정책·기업·개인이 각각 다른 방식의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 안팎을 넘나들며 상승세가 지속되는 흐름을 두고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환율 스파이크가 아닌 '구조적 고환율 국면'으로 진단한다. 미국발 정책과 금리 환경뿐 아니라 국내 기업 해외 투자 확대, 해외 증시로의 자금 유출, 엔화 약세 등 구조 변화가 겹치며 고환율이 고착화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복합 요인이 겹치며 원/달러 환율 1500원 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융 당국, 환율 안정·통화정책 신뢰 회복이 관건

구윤철 기재부 장관은 긴급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개최해 환율에 금융 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은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융 당국으로서는 환율 안정과 통화정책 신뢰 회복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등은 직·간접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통해 시장이 균형점을 찾도록 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환율이 한때 1470원대까지 치솟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 당국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긴급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금융 당국은 환율 안정과 통화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개입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구 부총리는 "국민연금·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 주체와 긴밀히 협조해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해당 발언이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풀이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 기조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오는 27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2.50%) 동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리 인하를 통해 한·미 금리 차가 확대되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져 고환율을 더욱 자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시장에서는 금융 당국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 등 시장안정 조치 ▲국민연금·수출기업·금융기관과의 외환 수급 조정 ▲단기 외화차입·헤지 규제 등 외환건전성 조정 등을 실시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같은 단기적 조치 외에도 중장기적으로 국내 경제 구조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정과 물가, 대외 수지 등을 관리해 원화 신뢰도를 높이고 구조적 달러 수요를 완화하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움직이기보다 쏠림과 속도를 조절해 시장이 스스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단기·중기·장기를 모두 아우르는 입체적 대응이 요구된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만약 환율이 1480~1500원 부근까지 급등하더라도 정부의 구두 및 실개입, 국민연금 전략적 환 헤지 등 정책 수단이 강하게 동원되며 빠르게 레벨을 낮출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1400원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달러의 완연한 약세와 외국인 국내 주식 순매수 확대 등 원화 강세 요인들의 동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 환 리스크 대비 체질 개선 필수

기업도 고환율 국면에서 체질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사진은 지난 14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는 모습. /사진=뉴스1


고환율 국면에서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환율 변동 폭이 커지면 기업들의 기존 사업 계획과 손익 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제 기업 스스로 환 리스크에 대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환율이 단기 이벤트가 아닌 구조적 환경으로 굳어진 만큼 기업별 특성에 따라 환율 체력 자체를 끌어올리는 전사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환율 국면에서 기업들이 먼저 실시할 수 있는 대응책은 선제적인 환 헤지 강화와 통화 기반 비용 및 매출 구조 재정비다. 원·달러 환율이 1470~1500원대 상단 구간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환율 급등 시 손실이 즉각 반영되는 만큼 수출 기업은 환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물환, 통화옵션, NDF(선도환) 등을 통한 헤지 비중 확대가 필수적이다.

반대로 원자재·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수입 기업은 고환율에 따른 비용 급증을 막기 위해 매입 환 헤지 비율을 상향 조정하거나 결제 통화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비용 흐름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생산기지와 공급망 재편도 중요해졌다. 미국·유럽 현지 비중이 늘어난 대기업들은 원자재·부품의 글로벌 조달을 분산하고, 생산기지를 다변화해 환율 민감도를 낮추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변동성이 큰 국면에서는 환율 방향을 맞추기보다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입장에서 적정 수준의 달러화 확보 등 환율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개인, 포트폴리오 재편해야… 글로벌 분산이 핵심

개인 투자자들은 고환율 시대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중요하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사진=뉴스1


개인 투자자들도 고환율 시대에서 자산 방어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단일 포트폴리오는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어 통화와 종목 분산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핵심 대응 전략이라는 평가다.

특히 고환율 국면에서 ▲달러 예금 ▲달러 MMF(머니마켓펀드)▲단기 미국채 ▲글로벌 ETF 등 달러 기반 안전자산에 관심이 쏠린다. 다양한 달러 베이스 상품을 활용해 통화와 지역 분산을 강화하는 용도다.

이 같은 상황에 해외자산 비중을 조절하려면 '환노출'과 '환헤지'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필수다. 환노출 상품은 환율 변동을 그대로 수익률에 반영하는 구조로 달러 강세가 이어질 때 수익률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환헤지 상품은 환율 변동을 제거하고 기초자산 가격만 따라가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영향을 받지 않아 변동성이 높은 환시장에서 리스크 관리에 적합하다.

결국 상품별 특성을 이해하고 각자의 투자 스타일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방산주, 수출주 등 환율 영향 종목을 전략적으로 편입하고 금과 원자재 등 안전 자산 비중을 보강하는 방법 등도 거론된다.

고환율이 새로운 정상값(뉴노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는 만큼 개인 투자자의 대응 역시 단기 매매보다 구조적 변화에 맞춘 포트폴리오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분산 투자를 적절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글로벌 벤치마크 등을 참고하며 포트폴리오 분산 구성해 변동성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강세장에서 이익 성장을 주도하는 업종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도체, 조선, 기계, IT 하드웨어 등 주도주는 변동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