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 공사 중단 시 발생하는 비용을 하청업체가 부담하던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기간 연장 의무화도 함께 추진되며 정부가 업계 불합리함으로 지적되던 관행들의 해결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한 공사현장 모습. /사진=뉴스1


산업재해로 공사가 중단됐을 때 발생한 추가 비용을 하도급업체가 떠안던 구조가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하청업체가 원청에 대금 조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령 개선에 나섰다. 공사기간 연장 의무화도 함께 추진된다. 다만 명확한 기준 마련은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2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공사 중단 시 하청업체가 대금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하도급대금 조정제도의 세부 항목 수정을 추진한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은 계약 기간 중 공급 원가 등의 변동으로 대금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다만 산업재해로 인한 공사 중단은 조정 사유로 규정되지 않아 협의 신청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산업재해로 인한 공사 중단 시 발생한 손실에 대해 하청업체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대금 조정 협의를 신청할 수는 있다"며 "다만 산업재해가 명시돼 있지 않아 하청업체들이 조정 신청을 꺼리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점검이 완료될 때까지 현장 공사는 중단된다. 해당 기간 발생하는 장비 임차료와 현장 유지비 등의 비용은 하청업체가 부담한다. 제도상 협의 요청은 가능하지만 법령에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이에 하청업체들은 원청업체와 거래 관계가 중단되거나 향후 불이익 등을 우려해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원청과 하청 간의 구조적 불합리함을 완화하는 방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원청에 과도한 부담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표명했다.

최규윤 대한건설협회 건설진흥실 부장은 "불합리하다고 지적받아온 업계 관행이 개선되는 건 긍정적이지만 현재 논의되는 개선 방향들은 모두 하청업체들 위주"라며 "이미 많은 비용 부담을 떠안고 있는 원청업체들에는 과도한 규제로 인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재해 발생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우 발주처와 원청업체 간의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재합의할 수 있는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며 "하도급법과 함께 건설산업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선해 발주처와 원·하청이 산업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소·중견 건설업체 회원사를 주축으로 구성된 대한전문건설협회 산하 연구기관에선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가 발생해 공사가 중단되면 다른 업체들도 피해를 받는 구조"라며 "조정 제도와 공사 기간 변경이 이뤄지면 책임 주체가 명확해지고 하청업체들이 느끼는 불합리함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형 건설업체와 달리 소규모 시공을 담당하는 중소·중견 원청업체들은 영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 규모 등을 고려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산재 발생 시 '공사기간 연장 의무화' 추진… "명확한 기준 마련 필요"

이번 개정으로 인해 중소·중견 원청업체들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온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공사현장 근로자의 모습. /사진=뉴시스


공정위는 세부 항목에 '산업재해' 문구를 추가하는 방식을 우선 검토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부담이 있어 산업재해를 명시하고 하청업체가 보다 쉽게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단계일 뿐 확정은 아니다"며 "조정제도 수정과 함께 원청·하청 간 대금 거래 전반의 부당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산재 발생 시 공사기간 연장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산재가 발생했음에도 공기를 연장하지 않을 경우 하청업체는 야간작업 등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을 감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게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의 판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재 발생으로 현장 중단 시 공사 기간에 대한 압박 때문에 하청업체들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다"며 "공공 공사에 도입된 적정 공사 기간 확보 조치를 민간에도 확장하는 방안을 국토부와 협의 중"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내용이 포함된 건설안전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현장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