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3년 9월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의 한화 전시장을 찾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에게 한화의 첨단 기술력과 폴란드 지역에 특화된 맞춤형 솔루션 등을 설명했다. /사진=한화


폴란드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가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면서 국내 방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폴란드가 과거 한국산 무기 도입에서 '가성비·전력화 속도·유연한 조건부 협상'을 높게 평가한 만큼 유럽연합(EU)과 경쟁에서 승기를 잡을지 주목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폴란드는 오는 28일 해군의날 행사에서 오르카 프로젝트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한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폴란드가 3000톤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본 사업비만 약 3조4000억원, 유지·보수·운영(MRO)까지 포함하면 최대 8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번 사업엔 한국 한화오션, 독일 TKMS,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스웨덴 사브 등 글로벌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EU가 무기 조달 시 유럽산 장비를 우선 고려하는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를 강화해 온 만큼 유럽 기업의 우위가 뚜렷하다고 평가된다.


직접 경쟁 구도에서는 독일 TKMS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된다. 독일은 디젤 잠수함 건조 역사가 길고 운용 신뢰도가 높아 유럽 내 시장 지배력이 탄탄하다.

국내 전문가들은 가격 경쟁력·운용 패키지 범위·전력화 속도 등 실익 요소를 감안하면 한국의 변수가 적지 않다고 평가한다. 김덕기 전직 해군 제독은 "폴란드가 유럽 내 조달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한국은 지난 무기 도입 사업에서 쌓아온 신뢰가 뚜렷하다"며 "전략적 접근 여하에 따라 경쟁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폴란드에 제시할 수 있는 전략 카드도 존재한다. 잠수함 운용 경험 축적 방안을 포함한 '패키지형 접근'이 폴란드의 실익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해군의 장보고급(209급) 잠수함이 퇴역을 앞두고 있어 이를 양도하는 방안이 전략적으로 거론된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신형 잠수함 인도 전 운용·정비·탐지·훈련 노하우를 선행 확보할 수 있어 전력화 속도 면에서 유리하다. 과거 인도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인도 받기 전에 러시아로부터 리스 운용하며 기술과 운용 경험을 축적한 사례가 있다.


훈련 인프라도 한국의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한국 해군은 진해에 디젤 잠수함 전문 교육기관을 운영 중이며 이미 여러 국가의 장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폴란드가 잠수함 전력 '제로 베이스'에서 역량을 확장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의 제안이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EU 우선주의라는 구조적 장벽은 부담이다. 폴란드는 NATO 회원국으로 유럽은 함정 조달 시 '나토 코드'(NATO Codification)를 기반으로 설계·자재·내구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 발트해 운용 환경에 맞춘 철판 내구성·부식 저항·수온 조건까지 맞춰야 한다.

국내 업계는 캐나다 잠수함 수출 전 참여 과정에서 이미 해당 기준 충족을 위한 설계 검토를 수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극권에 가까운 캐나다 해역 조건을 충족한 설계 경험이 폴란드 협상 과정에서 '기술 신뢰도' 요소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 기업 차원에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화오션은 폴란드와 스킨십을 늘리며 사업 가능성을 키워왔다. 폴란드 국영 방산 그룹 PGZ 소속의 조선소인 PGZ SW와 나우타 조선소는 한화오션과 오르카 사업은 물론 자국 해군 함정 산업의 현대화, 해외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 기회를 공동으로 모색하기로 했다.

김 전 제독은 "우리가 퇴역을 앞둔 장보고함을 리스해 주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수주전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폴란드는 신형 잠수함을 건조해 인도받기 전까지 퇴역함을 통해 잠수함 운용 노하우를 미리 습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이미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나토 기준을 충족하는 설계를 검토하고 준비해 왔기 때문에 폴란드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규격도 문제없이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전략적 이점을 잘 활용해 접근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