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업자본의 금융업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부분적으로 완화한다. 사진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기재부 업무보고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업자본의 금융업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부분적으로 완화한다. 첨단산업에 한해 일부 지주회사가 금융리스업을 제한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자회사의 자회사)가 증손회사(손자회사의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규제도 50% 이상으로 낮춘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를 전적으로 자체 조달해야 하는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26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을 한국 경제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면적 정책 전환과 흔들림 없는 실행을 추진하겠다"며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1.8% 플러스알파(+α)'로 제시했다.

정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한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리스업을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일반지주회사 역시 금융·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두고 있다. 첨단 산업의 설비 투자가 대규모·장기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해 지주회사가 장기 임대 형식의 금융 기능을 활용해 계열사에 필요한 설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또 일반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둘 때 적용되는 지분율 요건도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50% 이상 보유 시에도 허용된다. 지방 투자와 연계될 것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심사·승인을 받을 것 등이 조건으로 붙는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100% 지분을 확보한 경우에만 인정한다. 이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복잡한 지배 구조를 만들어 지배력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지주회사인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 확대에 맞춘 대규모 투자 필요성을 들어 관련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도 관련 규제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 특례 규정을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특례가 적용되면 SK하이닉스와 같은 손자회사는 별도의 금융리스 자회사를 설립해 설비·시설을 구축하고 이를 장기 임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외부 자금을 유치해 합작 형태의 자회사를 세우고 해당 법인을 통해 공장을 건설하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후 브리핑에서 "첨단산업 분야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고 필요한 투자 규모도 막대하다"며 "기업이 내부 유보금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외부 자금이 신속히 투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도 "이번 방안은 금산분리를 완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첨단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손보는 성격이 크다"며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진척돼 있어 빠르면 연초에 입법이 추진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