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CJ대한통운 배송완료 문자 비교. 쿠팡은 플랫폼명만 표기한 반면 CJ대한통운은 판매자명과 상품명을 모두 명시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소비자가 받는 배송 문자 한 통에도 국내 유통·물류 시장을 양분하는 쿠팡과 CJ대한통운의 생태계 전략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이 자사 브랜드(PB)와 로켓배송 앞세워 입점 판매자(셀러)의 존재감을 희석하는 반면, CJ대한통운은 셀러의 브랜드명을 전면에 노출하며 독자적인 브랜딩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로켓배송 및 풀필먼트 서비스(로켓그로스)를 이용한 고객이 받는 배송 안내 문자에는 판매자·상품 정보 없이 '쿠팡 로켓배송' 문구만 표기된다. "[쿠팡] 로켓배송 1박스 문 앞(으)로 배송했습니다"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쿠팡 직매입 상품이 아닌 경우 상품 일부가 표기되기도 하지만 스토어명은 문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CJ대한통운을 이용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오픈마켓 셀러의 배송 문자에는 '[OO상점] XX상품' 형태로 판매자 상호와 상품명, 상품 수량 등이 명시된다. 이 사소한 차이는 소비자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쿠팡에서 주문한 소비자는 '쿠팡에서 샀다'는 기억만 남지만, CJ대한통운을 통한 배송은 개별 상점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앱 내 사용자 환경(UI)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에서 상품을 검색하면 상품명과 판매 문구만 표기될 뿐 판매자의 스토어명은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로켓배송 제품인 경우 컬러로 강조해 스토어 이름보다 로켓배송 여부와 별점 후기가 더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오픈마켓인 네이버 쇼핑 검색 결과에서는 스토어명이 상단에 굵은 글씨체로 노출된다.

이 같은 차이는 두 기업의 사업 모델 본질에서 기인한다. 유통업을 겸하는 쿠팡은 플랫폼 운영자인 동시에 직매입·PB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플레이어'다. 구조적으로 입점 셀러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쿠팡이 '안심번호'를 도입해 셀러와 고객 간의 직접 소통을 차단하고, 구매 데이터를 독점하는 배경이다.


반면 물류업이 본업인 CJ대한통운은 셀러의 성장이 곧 자사 물동량 증대로 이어지는 상호 보완적 관계다. 이 때문에 배송 과정에서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셀러에게 제공하고 다양한 플랫폼(자사몰·오픈마켓 등)에서의 판매를 지원하는 개방형 물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쿠팡 점유율 40% 돌파… '플랫폼 종속' 우려 현실화

쿠팡과 오픈마켓(네이버) 상품 검색 화면 비교. 쿠팡 리스트에는 스토어 이름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네이버는 스토어 이름을 볼드 처리해 눈에 잘 띄도록 UI를 디자인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시장 지배력이 쿠팡으로 쏠리면서 셀러들의 '플랫폼 종속'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와 증권가 추산에 따르면 2024년 36.5%(쿠팡) 대 33.6%(CJ)로 박빙이었던 택배 시장 점유율은 2025년 말 시장 규모 55억건 기준 쿠팡 41.8%(약 23억건), CJ대한통운 29.1%(약 16억건)로 격차가 확대됐다.

압도적인 트래픽을 보유한 쿠팡에 입점하지 않고서는 매출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이에 맞서 CJ대한통운은 2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 주 7일 배송 시스템과 AI 자동화 센터를 구축하며 '반(反)쿠팡 연합군'의 물류 허브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독점 체제일수록 셀러들이 '브랜드 주권'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반 소비재가 아닌 로컬 브랜드나 고유의 경쟁력을 가진 셀러라면 쿠팡 의존도를 낮추는 멀티 호밍(Multi-homing)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네이버, 자사몰 등 브랜드 노출이 보장되는 채널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브랜드 자산을 축적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또한 여러 강연과 저서를 통해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 자원을 소재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혁신 창업가"라고 정의하며 "이들이 만드는 개별 브랜드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할 때 국가 경제의 창의적 다양성도 확보될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결국 당장의 매출 증대를 위한 플랫폼 의존과 장기적인 브랜드 자립 사이에서 셀러들의 전략적 선택이 향후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