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전자상가 일대 재개발을 둘러싸고 주택 비중을 대폭 늘려달라는 요구가 22일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사진은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시찰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용산전자상가 일대 재개발을 두고 상가 소유주들이 주거 비율 상향을 요구하고 나섰다. 상권 침체에 따른 생존 논리라는 설명이지만 산업 중심 복합개발이라는 서울시의 당초 정책 취지와는 충돌하는 대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내 나진·선인상가를 방문해 개발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상가 소유주 및 상인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산업 트렌드 변화에 따른 애로사항이 잇따라 제기됐다. 용산전자상가는 1990년대 PC 보급 확산과 함께 호황을 맞았으나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 확산 등 산업구조 변화와 시설 노후화가 겹치며 상권 활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다.


김규환 용산 선인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한때 오프라인 유통의 정점에 있었던 상가였지만 온라인 중심의 유통 구조로 전환되면서 기존 상인들의 사업 경로가 사실상 막혔다"며 "현재는 대형 쇼핑몰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매출을 유지하고 있으나 전체 매출은 과거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문객이 거의 없어 오랜 기간 영업해 온 상인들도 폐업하거나 자리를 떠나고 있다"며 "전자상가로서의 입지가 더 이상 과거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상가 관계자들은 용산전자상가 일대의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선인상가는 소유주가 약 1100명에 달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며 "현재 동의율은 약 60% 수준인데 다수 소유주가 주택 공급 확대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인재개발 추진위가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현행 계획상 공급 가능한 주택은 수요의 41% 수준인 최대 450가구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상가 소유주들은 오피스나 상가 비중을 대폭 줄이고 주택 비율을 70% 수준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일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전자제품 전문상가로만 개발할 수 있도록 한 기존 규제를 완화하고 신산업용도 30%를 의무 도입하는 조건 아래 업무·상업·주거 복합개발이 가능하도록 변경한 바 있다.

현장 민원·시정 방향 '줄타기'

오세훈 서울시장은 22일 주택 비중 확대 민원과 관련해 도시계획과의 정합성 문제를 들어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사진은 이날 진행된 오 시장과 상가 관계자 간담회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오 시장은 "영업 환경 악화로 상가 기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이곳은 산업적 입지와 서울 전체 공간 구조를 고려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으로 당초 설정된 목표와는 다소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주택 비율을 조정할 경우 산업 기능을 전제로 한 기존 도시계획과의 정합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는 산업, 주거, 학교, 문화·예술·여가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존 계획을 마련해 왔다"며 "이를 변경하려면 절차적으로 다소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장 의견을 종합해 주거 비율 조정이 가능한 여지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일부 상인들은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자 고향과도 같았던 용산전자상가 철거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선인상가의 한 상인은 "용산전자상가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곳인데 ICT 중심의 대규모 개발로 급격히 전환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며 "새로운 도심을 만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주상복합 단지로 바뀌는 데 대한 상인들의 정서적 저항도 크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산업 지형 변화로 기존 컴퓨터 중심 상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며 "재개발 과정에서는 대체지 마련과 영업 지속 방안이 중요하다. 이곳은 국제업무지구의 배후지로서 역할이 큰 만큼 서울 경제와 상인들의 이익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AI·ICT 콘텐츠 중심의 신산업 거점으로 육성해 글로벌 기업이 모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용산의 중·장기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사업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