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필 연구위원
혹여 이런저런 연이 다 끊겨 도무지 연을 찾을 수 없기라도 하면, 김춘수 시인이 ‘꽃’이란 시에서 열망했듯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도 그의 이름을 불러줘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관계가 되기를 열망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한 줄 시구절 속에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세상에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매우 외롭다고 한다. 관계가 없으면 이 세상 수십억 인구는 그저 걸어다니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관계가 없으면 말 그대로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회 속에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란 말인데, 실제로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이 비록 동물과 유사한 삶을 살았던 수렵의 시대에서조차 인간은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살았다. 혼자 수렵에 나서 토끼 한 마리를 잡으면 하루 식량에 불과했지만, 여럿이 힘을 합쳐 맘모스라도 잡으면 온 부족이 며칠은 먹을 걱정없이 지냈을 것이다.
결국 혼자보다 여럿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보다 윤택한 삶이 가능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혼자 살 수 있다면 인간이기보다는 야수 아니면 신,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을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낸다.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양한 기준을 잣대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개인의 자발적 의지가 반영되는 방식이냐 아니냐에 따라 ‘자발적 관계’와 ‘비자발적 관계’로 나눌 수 있다.
비자발적 관계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지 않거나 혹은 전혀 반영되지는 않는 관계방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혈연에 의한 가족이다. 부모나 자식 등은 내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닌, 순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다.
그 외 비자발적 관계의 유형으로는 흔히 말하는 학연과 지연에 의한 관계가 있다. 이는 태어나면서 혹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관계로 개인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지 않는 관계의 유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소위 학연, 혈연, 지연 등이 비자발적 관계의 대표적 유형들인 것이다.
비자발적 관계방식과 대칭되는 자발적 관계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상당부문 반영이 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가 직장에 들어감으로써 형성되는 관계이며, 그 외 종교단체 및 각종 동호회나 친목회 등도 이러한 관계방식의 하나다.
혈연에 의한 가족이 비자발적 관계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했지만, 가족 중 부부는 성질이 조금 다르다. 피로 맺어졌음을 뜻하는 혈연의 범주에서 다소 벗어나는 부부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가 상당부문 반영되는 자발적 관계의 유형이기도 하다. 부부라는 자발적 관계를 통해 가족이라는 비자발적 관계가 탄생되는 셈이다.
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 외에도 사적 생활부문인 사적관계와 공적 생활무문인 공적관계로 나눌 수도 있다. 가족과 직장이 각각의 대표적인 유형들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맺게 되는 관계의 유형으로는 그 친밀도에 따라 가족부터 친구, 지인(知人) 등으로 구분된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인 만큼 친밀도가 아무래도 가장 높으며, 그냥 ‘아는 사람’으로 통하는 지인은 여러 유형 중 친밀도가 가장 떨어지는 관계다.
지인 중에서 일부가 친구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냥 아는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접촉과 삶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친밀도가 쌓이면 지인을 넘어 친구가 된다. 친밀도가 전혀 없으면 그냥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데, 주변에 관계없는 사람만 있으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관계와 돈
우리 인간에게 다양한 관계가 필요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제는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회관계를 유지하는데 소용되는 비용은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경조사비다. 경조사비를 내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친분이 두터워서’와 같은 관계적인 측면을 고려하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처럼 직접적으로 관계적인 부문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고령자에게 경조사비는 꽤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생존과 직결되는 의식주와 관련된 비용을 제외할 경우 6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지출항목은 다름 아닌 경조사비다.
비단 경조사비뿐만 아니라 각종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교통비, 통신비 등의 간접비용을 비롯해 다양한 비용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면서 지출하게 되는 취미나 문화, 교육 등과 관련한 비용 역시 관계형성에 필요한 비용들이다.
이러한 비용들의 증가세는 지난 몇 년간 가계의 지출 증가율이나 물가상승률을 상회하고 있어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가계의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년 이후 중요성이 깊어지는 관계의 의미들
하지만 이런 비용부담에도 불구하고 관계형성은 인간다운 삶에 반드시 필요한 부문이다. 특히 은퇴 이후 각종 관계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장년에게 있어 관계의 형성 및 유지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됐을 때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수 있다. 죽음과 바꿀 수 있을 만큼 관계의 형성과 유지는 장년의 삶에 밥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런저런 사회관계망이 단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 상대가 되는 등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많아질수록 관계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점을 고려해 미리부터 이런저런 사회 관계망을 유지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관계의 대표적 의미로 관계는 한 개인의 자존감 상승에 큰 영향을 준다. 자존감이란 한 인간으로서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상승하는 것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다.
다양한 사회관계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존재감을 확인할 때 장년 이후 찾아오기 쉬운 우울이나 외로움, 소외감 등의 부정적 감정들은 자리할 틈이 없게 된다.
또한 관계는 사회적 고립을 방지한다. 최근 독거노인이다 해서 장년층을 중심으로 1인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사회 현실 속에서 관계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방지해 준다. 극단적으로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외로이 죽음을 맞는 경우를 줄일 수 있다.
그 외에도 관계를 맺으며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생활의 리듬을 갖게 하며, 따라서 소일거리가 줄어드는 노년에 시간계획을 가능케 한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이런저런 비용이 발생하고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는 어쩌면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출해야 할 식비처럼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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