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투자은행)가 증권업계 화두로 떠오르자 증권사들이 해외진출을 통한 본격적인 IB업무 확장에 나섰다. 해외진출 초반에 홍콩과 중국 위주로 교두보를 마련하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장과 미주지역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과거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해외진출 성과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증권사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점포, 3년 연속 감소 추세


국내증권사의 해외점포는 2009년 이후 줄곧 적자를 내다가 2014년과 2015년 흑자로 돌아섰지만 지난해 다시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해외점포 당기순이익은 450만달러(약 54억원) 손실을 기록, 전년(2390만달러) 대비 2840만달러(약 328억원) 감소했다.

지역별로 미국(1220만달러), 일본(610만달러), 싱가포르(80만달러), 캄보디아(10만달러) 등 4개국이 판매관리비가 늘어나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점포가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지면서 현지에서의 사업을 정리하는 국내증권사도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5개 국내증권사가 12개국에 진출해 총 68개 해외점포(현지법인 및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지역별로는 중국 등 아시아지역이 55개(현지법인 39개·사무소 16개), 미국 8개, 영국 4개, 브라질 1개 순이다. 전년에 비해 지점은 56개에서 51개로, 사무소는 19개에서 17개로 감소했다. 2014년 80개였던 국내증권사의 해외점포수는 2015년 75개, 지난해 68개로 3년 연속 줄었다.


지난해 점포를 폐쇄한 증권사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키움증권, 하나금융투자, 한화투자증권, SK증권 등이며 사무소 문을 닫은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법인 2곳, 홍콩법인 3곳, 베트남법인과 사무소, 일본 도쿄사무소 2곳 등 총 7곳이다.


NH투자증권 베이징 현지법인. /사진제공=NH투자증권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증권업계의 전반적인 영업실적 부진 등으로 국내증권사의 해외점포수가 감소하는 추세”라며 “일부 해외점포가 보유한 타 해외점포의 지분법 평가손실과 신사업(PBS) 추진 관련 판매관리비 등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적자를 냈다”고 설명했다.
◆진출 늘어도 IB 경쟁력 약해

과거에는 증권사 해외진출이 신흥국시장 개척으로 국한됐다. 주로 동남아 등 미개척시장을 선점한 후 영업하는 데 머물렀다. 어느 증권사나 해외진출 스타일이 비슷했다. 일단 해외에 현지법인을 만들고 국내 금융상품에 관심 있는 해외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브로커리지영업을 했다. 따라서 충분한 시장조사가 부족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해외점포를 설립했던 게 지금의 폐쇄로 이어졌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해외진출 성격이 IB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증권사들은 악화된 국내 증권업황과 파이 나누기식 수익창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진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자본을 늘려 글로벌IB와 경쟁하기 위한 기틀을 다졌다.

전문가들은 올해 초대형IB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해외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인 만큼 기존 해외점포의 실적부진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해외점포의 부진이 글로벌IB 도약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 브로커리지영업에서 탈피하고 신규수익 창출과 IB부문 강화를 위한 해외진출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역량부족·운용부실 보완해야

증권가 일각에서는 국내증권사의 국내자산 쏠림현상과 해외경쟁사 대비 역량이 부족한 점을 우려한다.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증권사 중 절반이 아직 국내시장에서도 자리 잡지 못해 글로벌IB와의 경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영업실적에서 해외점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위험이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무상황만큼이나 운용부실 해결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머니S DB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사업의 리스크를 감지하지 못하고 전반적인 영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면 적자 원인을 더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시장을 파악하지 않고 경쟁사를 따라 IB사업을 해외로 확장하는 업계의 분위기가 해외점포 실적부진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증권사는 해외증권사와 달리 자산이 국내자산에 편중돼 해외사업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앞으로 해외진출이 불가피한 만큼 현지실정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경쟁력을 갖춰서 해외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초대형IB 출범을 앞둔 대형증권사를 중심으로 증자와 현지법인 인수 등을 통한 해외사업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중개 위주의 영업에서 IB업무 확대와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사업 신규진출 등으로 수익원이 다양화되는 추세다. 다음달 이후 초대형IB가 등장하면 해외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M&A(인수·합병)가 이뤄지는 등 국내증권사의 해외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존의 해외진출 부진을 교훈 삼아 글로벌IB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초기에 해외로 진출했던 증권사 중 몇몇은 자본의 한계를 느끼고 일부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다음달 이후 초대형IB가 도입되면 글로벌IB와의 경쟁 등으로 추가적인 해외진출이 불가피하다”며 “앞서 부족했던 점을 보강하고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해 해외사업을 개선·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