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일차, 10개월, 10년…. 세월은 빨리 지나간다.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준비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2세가 태어나고…. 살다보니 어느새 내 이름은 지워지고 OO의 배우자, OO의 엄마 혹은 아빠로 살고 있다. 어디 변한 것이 이뿐이랴. 내집 마련을 위해 여러번 이사를 하고 덩달아 대출 빚도 늘었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머니S>가 ‘3050’ 대한민국 부부들의 일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 가정, 그리고 돈에 대한 3050 부부들의 속내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먹고 살기 참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회의를 느낀다. 아끼고 아껴도 빠듯한 집안 살림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과 물가. 그야말로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시대에 살다 보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양육부담은 어떨까. 출산휴가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여성은 소위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주양육자, 경력단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좀 키워놨다 싶으면 사교육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쟁터가 기다린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사교육비에 입시학원비, 대학등록금까지…. 대학민국에서 아이 한명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3억~4억원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부부의 인생에는 남은 게 없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미혼남녀는 결혼을 ‘덫’이라 부른다. 빚을 지고 시작해 아이라는 또 다른 빚을 낳고 노후대책 없이 결국 빚만 남는 결말. 하나둘 비혼주의자가 늘어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는 부부가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곧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연결된다.
결혼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것일까. 실제 부부들이 안고 사는 고민은 어떤 것일까. <머니S>가 창간 10주년 특별기획으로 30~50대 기혼독자 200명(남녀 각각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들이 가진 결혼에 대한 인식과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 결혼하면 손해 보는 한국사회
우선 대부분의 부부는 결혼에 대한 부담을 느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84%)이 여성(69%)보다 결혼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꼈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성(76%)보다 적은 55%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상대적으로 결혼에 더 큰 짐을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 부담을 안겨준 직접적인 원인(중복응답 가능) 중 내집 마련, 결혼비용 등에 따른 금전적인 부담이 가장 컸다. 이어 자유로운 삶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감, 새로운 가족 및 적응에 대한 부담감, 출산 및 육아에 대한 부담감 등이 뒤따랐다. 성별로는 남성의 경우 금전적인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은 반면 여성은 자유로운 삶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감에 가장 많은 표를 던졌다.
예로부터 관례처럼 내려온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개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결혼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든다. 결혼 3년차 직장인 이모씨는 “오히려 사회가 결혼을 막는다”며 “취업난은 결혼과 출산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고 좁은 취업문을 뚫고 겨우 자리를 잡아도 전셋값이라는 큰 벽 앞에 결혼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응답자는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온다는 것은 빚을 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2세에 대한 부담도 높은 편이었다. 2세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 10명 중 6명이 2세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답해 출산에 대한 압박이 남성보다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62%가 2세를 꼭 낳아야 한다고 답한 남성들과 극명하게 갈리는 대목이다.
결혼 10년차 주부 김모씨는 “여성들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출산에 대한 압박이 크다”며 “출산휴가제도가 보장돼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하고 몇년 쉬다 사회에 복귀하면 동료들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여자가 손해 보는 게 많다”고 말했다.
남성들 역시 가장이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출산과 양육은 여자의 몫이라거나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 보수적 시각이 존재했다.
자녀 출산 및 양육 시 가장 큰 애로사항 역시 금전적인 원인(50.5%)이 가장 많았다. 남녀 모두 양육하는 데 드는 금전적인 부담을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고 가사·육아에서 오는 노동의 부담, 길러줄 주양육자(베이비시터, 할머니)의 부재가 그 다음을 차지했다. 출산지원금·육아시설·경력단절 등 제도적 지원 미비 등도 소수였지만 양육에 부담을 주는 원인으로 꼽혔다.
◆노후대책 고민… 골칫거리는 ‘돈’
부부들이 꼽은 현재 가구의 최대 고민거리는 무엇일까. 36.5%가 노후대책을 꼽았다. 내집 마련, 전·월세 보증금 마련이라는 응답은 32.5%였다. 이어 아이 양육비, 교육비에 대한 부담(16.5%), 수입 불안정(13.5%)이 뒤따랐다.
구체적으로 노후대책의 밑그림을 그린 이는 6.5%에 불과했다. 노후생활을 위한 경제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48.5%로 절반에 가까웠다. 나름대로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45.0%였다.
결국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노후대책 준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계의 주거비(37.5%). 주택마련, 자녀교육 등 라이프사이클상 30대 후반부터 줄줄이 대기 중인 지출 항목들이었다.
가계부채 및 카드 빚(28.5%)은 2순위 골칫덩이다. 가구당 62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한 조사결과를 봐도 가계 부채에 대한 부담은 누구나 동감하는 대목이다. 이어 본인 또는 자녀의 결혼자금 마련(16.5%), 교육비 지출(10.5%), 의료비 마련(7.0%)도 어려운 문제로 조사됐다.
반면 직장인 대부분은 40대 이후 은퇴를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나 혹은 본인이) 몸담은 업종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41~50세라고 꼽은 응답자가 34%에 달했다. 51~60세에 은퇴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49.5%로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은 16.5%에 그쳤다.
은퇴시기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직 56세까지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의 ‘오륙도’나 45세 정년을 뜻하는 ‘사오정’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체감정년이 36.5세로 체온과 같다는 점에 빗댄 ‘체온퇴직’, 38세까지 직장 다니면 선방했다는 ‘삼팔선’ 등의 풍자가 부부들을 옥죄고 있다.
3050세대 부부들은 노후에 혼자 살기 힘들 때 무엇에 의지한다고 답했을까. 과반수에 약간 못 미치는 응답자(42.0%)가 ‘복지시설에 의지하겠다’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를 공동 1위로 꼽았다. ‘자녀에게 의지하겠다’는 응답자는 13.5%에 그쳤고 ‘형제자매나 친척에게 의지하겠다’는 2.0%에 불과했다.
결혼을 하고 2세를 낳고 평생 일을 하며 키우느라 정작 노후대책은 해두지 못했지만 자식에게만큼은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잘 반영된 부분이다. 처한 조건이 싸늘하다고 해도 결혼을 하나의 터닝포인트로 여긴 결과로도 보여진다. 결혼을 전제로 한 저출산 대책과 복지정책이 시급히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청년이 결혼을 포기하고 부부가 출산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사회. 이대로라면 저출산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