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CJ그룹 부회장/사진=로이터
‘기생충’이 세계 영화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딛고 총 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기생충이 세계무대에서 증명한 봉준호 신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봉 감독에 이어 무대에 서 마지막 수상소감을 밝힌 한 여인에게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그는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봉준호 신화’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글로벌 성공 뒤 ‘통큰 투자’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머리,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과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 ‘기생충’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지원해줬다”
이날 유창한 영어로 수상소감을 전하던 이 부회장은 봉 감독과 출연 배우, 스태프만큼이나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 온 이 부회장의 남다른 감회를 엿볼 수 있는 장면.
업계에서는 기생충의 이 같은 글로벌 성공이 영화의 작품성에 더해 CJ의 통큰 투자가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기생충이 세상에 빛을 보기 전까지 든 돈은 모두 140억원. CJENM이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와 기생충 제작 및 공급 계약을 125억원에 체결하면서 대부분의 돈을 지원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봉준호 감독 작품 대부분에 투자하고 배급을 담당했다.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과 ‘마더’, ‘설국열차’ 등의 배급도 CJENM이 맡았다. 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525만명, 2009년작 ‘마더’는 298만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특히 제작비만 300억원이 넘게 들어간 2013년작 ‘설국열차’는 이 부회장이 영화투자와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성공의 숨은 주역은 단연 최대 재정적 후원자인 이미경 부회장”이라며 “그는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영화 제작 전반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영화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그는 ‘한류의 세계화’를 표방한 한국영화의 국제화 추진 사업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일제당 입사 후 문화사업 ‘한길’
그는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녀로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손녀이자 이건희 회장의 조카다. 또 이재현 현 CJ그룹 회장의 누나로, CJ 글로벌 문화 산업 전반을 총괄해 온 대부다. CJ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지난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독립한 이후 기존 사업과 전혀 접점이 없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주력 사업 분야로 결정했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제일제당에 입사한 이후 문화산업 전반을 이끌어 왔다. 그는 2011년 CJ그룹의 부회장이 되기 전까지 제일제당과 CJ엔터테인먼트의 사업부 이사·상무, CJ미디어 부회장,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철저히 ‘한길’을 팠다.
그중에서도 CJ 문화 산업을 상징하는 분야는 크게 두가지. 하나는 예능·드라마를 주축으로 한 케이블TV 산업, 또 하나는 영화 투자 산업이다. 이 부회장이 국내에서 그룹을 이끌던 시기 두 분야 모두 광폭 성장을 거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케이블TV 채널 분야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CJ 계열에는 드라마·예능 전문 채널인 TVN, 음악 전문 MNET, 영화 전문 채널(ch)CGV 등 10여개의 케이블 채널이 있다. 영화 투자 산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지만 이번 기생충의 흥행으로 CJENM 실적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존재감 입증 국내 경영 복귀는 NO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로 존재감을 입증한 이 부회장의 국내 경영 복귀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그는 수년간 건강상 이유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난 2014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정치적 풍파를 겪은 후 국내에선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퇴진 압박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글로벌 사업을 챙기고 있지만 이번을 계기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빠른 시일 내 국내 경영 복귀를 내다본 것 아니겠냐”고 귀띔했다.
다만 CJ그룹 내부에서는 경영 복귀라는 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당시 정권 압박을 받은 것은 맞지만 이 부회장이 미국을 건너간 건 논란이 있은지 11개월 뒤의 일로 경영 퇴진의 의미보다 건강상 이유로 글로벌 업무를 챙겼다는 설명이다.
CJ 관계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글로벌 문화사업과 케이콘, 이벤트 등을 챙기는 업무를 했다”며 “경영에서 물러난 적이 없기 때문에 복귀란 말은 적절하지 않고 글로벌 업무를 계속해서 챙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그의 행보에 주목한다. 지난달 미국의 기업전문매체 포춘은 ‘기생충’과 이미경 부회장의 인연을 소개하며 “영화의 최대 재정적 후원자는 한국 최대 재벌가의 일원인 미키 리(이미경 부회장의 영어 이름)“이라며 ”미키 리는 특히 영화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을 지원해 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기생충. 그리고 숨은 주역으로 떠오른 이 부회장.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프로필
▲CJ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상무 ▲CJ아메리카 부회장 ▲CJ미디어 부회장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632호(2019년 2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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