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늦은 저녁 8시, 전화가 걸려온다.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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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퇴근 후 편하게 쉬고 있다가 짜증이 샘솟는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의 정체
누구나 이와 유사한 전화를 한번쯤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보콜'이라고도 불리는 자동녹음전화는 주로 마케팅이나 광고 홍보 목적 등으로 사용된다.

사람이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녹음된 음성이 제공되는 서비스다 보니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걸려오는 번호를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한 번호를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다시 걸려오기 일쑤다.
사진은 기자가 평소 받는 스팸 전화들. 밤낮할 것 없이 수시로 걸려온다. /사진=전은지 기자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로보콜은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유발한다. 직장인 안모씨(50대·여)는 스마트폰에 걸려오는 전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그는 "스팸전화인 것을 알아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는다"며 "많게는 하루에 5회 이상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최모씨(20대·여) 역시 로보콜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불법 로보콜이 하도 많이 걸려오다 보니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잘 안 받게 된다"며 "그로 인해 꼭 필요한 전화를 놓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로보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수신시 음성메시지로 바로 연결되는 자동녹음전화에도 전화소비자보호법(TCPA)을 적용해 텔레마케팅 대행사가 소비자 동의 없이 전화를 무작위로 걸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으로 전화 통화를 연결하고 싶어하는 모든 통신사는 FCC에 등록해야 하며 불법 전화를 줄이기 위해 '구체적이고 적정한 조치'를 취했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현존 시스템 '두낫콜'의 한계점
우리나라에서도 광고성 로보콜 전화를 막기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50조 4항에 의하면 이용자가 광고성 정보의 수신을 원하지 않는 경우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연락중지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기도 했다.

전화권유판매 수신거부의사 등록시스템(Do Not Call·두낫콜)이 그 사례다. 이 시스템은 무분별한 전화권유판매 행위에 대한 소비자의 수신거부의사 표시와 사업자의 공정한 시장조성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두낫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보이는 첫 화면의 모습. /사진=홈페이지 두낫콜 캡처
이곳에서 휴대폰 번호를 인증한 후 수신 거부 등록 절차를 마치면 시스템에 등록된 모든 사업체의 전화권유판매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다만, 2년마다 갱신이 필요하며 시스템에 등록된 업체만 거부가 가능해 미등록 업체는 제외되는 맹점이 있다. 

또 걸려오는 전화는 원칙적으로 수신자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 일부 불법 로보콜은 수신자의 허락 없이 모은 개인 정보로 전화를 걸고 있다. 이 경우에는 명확한 업체명 등을 알 수 없어 차단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족한 국내 기업·정부 차원의 제도… 후속 대처만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국내에서의 해결법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로보콜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도적 차원의 해결법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에 머니S가 국내에서는 어떤 제도를 통해 로보콜을 막고 있는지 각 통신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문의해봤다.

A 통신사 관계자는 "보통 사업자마다 번호를 여러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러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광고나 마케팅 등 상업으로 이용되는 번호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사용자가 번호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통신사가 알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B 통신사 역시 "통신사 차원에서의 번호 차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통신사에서 임의로 차단할 번호를 판단할 수 없다"며 "누군가에게는 번호가 필요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통신사가 가치판단을 통해 전화를 차단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C 통신사 관계자는 필터링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통신사마다 자체적으로 스팸 필터링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면서도 "기계가 하는 것이다보니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일단 전화가 정상적으로 걸린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필터링이 된다"고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스팸전화를 차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 인터넷이용자 정책과 주무관은 "전화를 받을 때 광고성 정보가 시작되는 부분에 광고를 의미하는 음성, 전송자의 명칭, 전화번호, 수신의 거부 또는 수신동의 철회 방식 안내를 의무적으로 하게 하고 있다"며 "KISA 불법스팸대응센터를 통해 스팸신고, 수신거부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소비자의 신고가 누적되면 번호의 차단이 들어가는 것으로 선제적인 차단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화가 걸려오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조례와 법안을 찾아봤으나 현 제도상 스팸전화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소비자의 신고를 바탕으로 한 스팸 처리나 개인적인 차단이 최선이었다.

로보콜에 관한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음에도 이를 제재할 방안과 법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로보콜로 불편을 겪는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조속히 나올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