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7일 일요일 오후 3시. 아직 홍대거리는 한산한 시간이다. 하지만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 '벨로주(VELOSO)'에는 이 시간부터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건물 2층에 있는 벨로주 문 앞에서 1층 입구까지 사람들이 일렬로 줄지어 섰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포크가수 오소영과 모던록밴드 줄리아하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즈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 오소영 씨는 어쿠스틱기타로 연주를 시작했다. 40여분간 그의 공연이 계속됐고, 숨죽이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관객들은 간간히 작은 소리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오소영에 이어 무대에 오른 줄리아하트 역시 잔잔한 멜로디로 벨로주에 모인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홍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茶와 멜로디의 궁합 '벨로주'
 
2008년 9월에 문을 연 벨로주는 평소에는 일반 카페와 마찬가지로 음료나 맥주를 마시는 곳이다.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또는 공휴일에 2시간가량 인디뮤지션들이 공연을 마련한다.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도 없다. 단지 벨로주 블로그(www.veloso.co.kr)에 공지된 공연스케줄을 확인한 사람들이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음악과 가수를 찾아 이곳을 찾는 것이다.
 
카페 공간의 제약상 70명 정도 블로그를 통해 공연 예약을 받고 있는데, 예약 인원은 공연 공지가 올라온 후 며칠 만에 70명을 넘어선다. 1만5000원의 공연입장료를 지불하면 자신이 원하는 음료나 맥주를 한잔 마실 수 있다.
홍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듯 홍대거리에는 벨로주와 같은 음악을 테마로 한 카페들이 많다. 카페, 클럽, 공연장의 경계를 살짝 넘나들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 및 놀이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TV나 대형공연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홍대거리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동아리방 같은 편안함 '무대륙'
 
피아노, 드럼, 고가의 엠프와 음향시스템 등이 구비된 스테이지가 있는 벨로주와 달리 카페 '무대륙'은 소박함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3월9일 화요일, 아직 정상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오후 4시께 무대륙을 찾아가자 때마침 세명의 뮤지션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마련된 스테이지가 아니라 카페의 정가운데 작은 엠프와 앙증맞은 미니드럼이 세팅돼 있는 모습은 마치 동아리방에 모인 친구들이 맥주와 음악을 함께 즐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무대륙은 매주 목요일, 다양한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다. 스테이지는 필요치 않다. 그저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 모이면 공연 준비는 모두 끝.
홍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건아 사장은 “꽤 유명한 밴드가 초대손님으로 오는 날이면 이 좁은 곳에 카페 문을 제대로 닫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한번은 120명 정도가 음악을 즐기러 온 적도 있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소위 잘나가는 밴드의 음악보다 조금 낯설지만 독특한 음악을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김 사장은 "홍대야 워낙 다양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되도록이면 실험적인 음악, 재미가 넘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무대를 많이 열어주는 편이다"고 말했다. 자세한 공연 일정은 무대륙 홈페이지(club.cyworld.com/mu1224)에서 확인할 수 있다.

◆뮤지션들의 아지트 '샤'
 
록 매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장수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이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샤'를 찾으면 좋을 것 같다. 바로 허클베리핀의 소속사인 샤 레이블(SHA LABEL)이 운영하는 바(Bar)로, 일반 손님뿐 아니라 인디 뮤지션들의 아지트 역할도 하고 있는 곳이다.

샤는 풀밴드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말 그대로 그냥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바다. 하지만 종종 인디 뮤지션들이 비공식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김효정 매니저는 “상상마당 등에서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이면 이곳에 왔던 손님들이 더 놀라는 일도 다반사”라며 “무대에서 봤던 크라잉넛이나 장기하 등 얼굴이 잘 알려진 뮤지션들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어 신기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홍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물론 공연이 없는 날에도 이곳에 오면 반가운 밴드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 역시 인디가수 루네가 가게 장사를 돕고 있었다. 김 매니저는 “인디음악하는 사람들은 으레 이곳에 오면 누군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자주 들르곤 한다”며 “실제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같이 술 한잔 기울일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인디뮤지션들의 아지트’란 소문이 나면서 일반인들에게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홍대거리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을 만한 명소들이 많이 있다. '빵' 'FF' '프리버드' '제스' '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카페, 클럽, 공연장 중 어느 하나의 목적에만 충실하지 않는다. 공통적인 매력이 있다면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열성적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 해도 이것 하나만 미리 직접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일부 클럽은 관객들의 좌석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스탠딩콘서트를 주로 연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선 채로 음악을 즐길 체력이 안 된다면 대략 낭패일 수도 있으니까.


"삶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공간"
무대륙 김건아 사장
 
홍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삐걱. 기자 일행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한창 기타 연주에 빠져 있던 김건아 사장이 일행을 맞는다. “다들 직업이 있는 친구들인데 음악이 좋아서 우리끼리는 이러고 놀아요.”
 
쑥스러운 듯 말하는 김 사장은 무대륙을 “전문연주가든 아니든 그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 조금은 생소하고 낯설지만, 재기가 넘치는 다양한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장사 욕심을 생각한다면 유명한 밴드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그러나 김 사장은 “이 무대륙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음악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이 두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홍대 중심가부터 거대한 자본으로 으리으리하게 지은 곳이 워낙 많아졌다”며 “요즘엔 비슷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찢어먹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을 즐길 만한 공간을 운영하던 김 사장과 같은 이들이 결국은 문을 닫고 떠나가는 모습도 많아졌다.
 
김 사장은 “그래도 ‘겨우겨우 버틸만한 수준’으로는 벌이가 된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는 “이곳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알게 된 건 ‘의외로 동지가 많다’는 것”이라며 "거꾸로 생각하면 어렵더라도 이곳이 단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삶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어려워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