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담합… 계약서 조작… 학력 차별
고개 못 드는 은행, 끝은 어디?
성승제
6,997
공유하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담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소비자에 불합리한 부분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개선해 나가겠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월26일 열린 제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송구스럽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부실 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에는 시중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과 계약서 조작, 학력에 따른 대출금리 차별 등 비리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믿었던 시중은행마저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일부 고객들은 은행을 상대로 단체소송까지 추진하고 있다. 대체 그동안 은행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담보대출 계약서 직원 맘대로 조작 파문
논란의 시초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약 30명에 달하는 고객의 아파트 중도금 대출계약기간을 임의로 바꾸려다 경찰 수사망에 올랐다.
국민은행은 소송을 제기한 안씨 등의 대출계약서 원본에서 상환기한을 지우고 다른 숫자를 적어 넣거나 숫자를 변조하는 수법으로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 등은 국민은행 측이 중도금 대출 상환시기를 앞당겨 잔금 대출로 넘기고 기한이익(법률행위에 기한을 두는 채무자의 이익)을 잃게 하려는 목적으로 서류 조작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3년 만기로 중도금 대출을 받았는데 2년2개월 만에 대출금을 갚으라는 연락이 와 원본을 찾아봤더니 칼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숫자를 지운 흔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담당 직원이 숫자 '3'의 아랫부분을 긁어내 '2'로 바꾸고 뒤에 '2개월'을 적어 넣거나 숫자를 모두 긁어내고 도장으로 '2년2개월'이라고 찍었다는 것.
이에 따라 안씨 등 고객 30여명은 최근 대출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은행 측을 검찰에 고소하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또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넘겨 조사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조작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본점에서 대출승인을 내주면서 만기를 줄여 재계약하도록 했지만 일선 2개 지점에서 고객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대출계약서의 숫자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민원을 접수받아 상환을 연기해 고객들이 금전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들의 부당한 가산금리 챙기기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공개문을 보면 신한은행은 대출자들의 학력 수준에 따라 신용등급을 차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은행의 신용등급 평점을 보면 고졸 이하 대출자는 13점인 반면 석·박사 학위자는 54점이다. 직장과 상환능력을 떠나 학력이 낮은 고졸자들은 석·박사에 비해 이자를 더 내야 했다. 또 일부 고졸자들에게는 아예 대출조차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한은행이 이렇게 추가로 얻은 수익은 2008~2011년에 무려 17억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개인별 학력차는 직업·소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학력을 별도 항목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며 "그럼에도 학력 때문에 대출이 거절되거나 더 많은 이자 부담을 초래한 사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제도를 바꿨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학력 신용평점은 첫 거래 후 6개월간 한시적으로 반영했다"며 "감독당국과 감사원 지적 후 지난 5월 폐지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가산금리를 높인 곳은 신한은행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은행들은 담합을 통해 CD금리를 조작하거나 5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엔 뚜렷한 근거도 없이 1%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더 받았다. 또한 다른 은행에 대출이 많다는 이유로 벌칙성 가산금리를 매기거나 평가제도가 바뀌었다며 일방적으로 높은 금리를 부과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이자수익을 위해 부적정한 사유로 가산금리를 신설하거나 인상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국민·우리·신한은행 등 4개 대형은행이 부적절하게 가산금리를 높여 2009년 2427억원, 2010년 4827억원, 2011년 3296억원의 이자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했다.
금감원도 이런 관행을 방관 또는 유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승인이 없었다면 은행들이 이 같은 편법을 저지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은행은 물론 금융당국도 국민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불똥 튈라…몸 사리는 은행들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하고 계약서를 제멋대로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부 은행들의 못된 짓으로 괜히 우리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은행권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불거진 일부 은행들의 불법·편법 영업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비난 여론에 대해서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일부 은행들이 저지른 만행에 은행 전체가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특히 은행이 고객의 신뢰를 담보로 운영되는 만큼 이번 사태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앞으로 여론이 조용해질때까지 내부조직을 좀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최근 민병덕 은행장의 지시로 지난 7월24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든 대출약정과 펀드·정기예금 등 상품판매 과정에서 서류 조작이나 불완전 판매 등 규정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TF는 경영관리 담당 부행장이 위원장을 맡고 실무 부서장들과 팀장급으로 구성했다. 이를 위해 국민은행 영업감사부는 감사역들을 전 영업점에 파견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은행 역시 전 영업점에 중도금 대출서류에 고객들의 자서(차주가 직접 쓰는 것)가 잘 돼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월26일 열린 제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송구스럽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부실 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에는 시중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과 계약서 조작, 학력에 따른 대출금리 차별 등 비리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믿었던 시중은행마저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일부 고객들은 은행을 상대로 단체소송까지 추진하고 있다. 대체 그동안 은행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
◆담보대출 계약서 직원 맘대로 조작 파문
논란의 시초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약 30명에 달하는 고객의 아파트 중도금 대출계약기간을 임의로 바꾸려다 경찰 수사망에 올랐다.
국민은행은 소송을 제기한 안씨 등의 대출계약서 원본에서 상환기한을 지우고 다른 숫자를 적어 넣거나 숫자를 변조하는 수법으로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 등은 국민은행 측이 중도금 대출 상환시기를 앞당겨 잔금 대출로 넘기고 기한이익(법률행위에 기한을 두는 채무자의 이익)을 잃게 하려는 목적으로 서류 조작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3년 만기로 중도금 대출을 받았는데 2년2개월 만에 대출금을 갚으라는 연락이 와 원본을 찾아봤더니 칼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숫자를 지운 흔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담당 직원이 숫자 '3'의 아랫부분을 긁어내 '2'로 바꾸고 뒤에 '2개월'을 적어 넣거나 숫자를 모두 긁어내고 도장으로 '2년2개월'이라고 찍었다는 것.
이에 따라 안씨 등 고객 30여명은 최근 대출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은행 측을 검찰에 고소하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또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넘겨 조사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조작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본점에서 대출승인을 내주면서 만기를 줄여 재계약하도록 했지만 일선 2개 지점에서 고객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대출계약서의 숫자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민원을 접수받아 상환을 연기해 고객들이 금전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들의 부당한 가산금리 챙기기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공개문을 보면 신한은행은 대출자들의 학력 수준에 따라 신용등급을 차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은행의 신용등급 평점을 보면 고졸 이하 대출자는 13점인 반면 석·박사 학위자는 54점이다. 직장과 상환능력을 떠나 학력이 낮은 고졸자들은 석·박사에 비해 이자를 더 내야 했다. 또 일부 고졸자들에게는 아예 대출조차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한은행이 이렇게 추가로 얻은 수익은 2008~2011년에 무려 17억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개인별 학력차는 직업·소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학력을 별도 항목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며 "그럼에도 학력 때문에 대출이 거절되거나 더 많은 이자 부담을 초래한 사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제도를 바꿨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학력 신용평점은 첫 거래 후 6개월간 한시적으로 반영했다"며 "감독당국과 감사원 지적 후 지난 5월 폐지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가산금리를 높인 곳은 신한은행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은행들은 담합을 통해 CD금리를 조작하거나 5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엔 뚜렷한 근거도 없이 1%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더 받았다. 또한 다른 은행에 대출이 많다는 이유로 벌칙성 가산금리를 매기거나 평가제도가 바뀌었다며 일방적으로 높은 금리를 부과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이자수익을 위해 부적정한 사유로 가산금리를 신설하거나 인상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국민·우리·신한은행 등 4개 대형은행이 부적절하게 가산금리를 높여 2009년 2427억원, 2010년 4827억원, 2011년 3296억원의 이자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했다.
금감원도 이런 관행을 방관 또는 유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승인이 없었다면 은행들이 이 같은 편법을 저지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은행은 물론 금융당국도 국민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불똥 튈라…몸 사리는 은행들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하고 계약서를 제멋대로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부 은행들의 못된 짓으로 괜히 우리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은행권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불거진 일부 은행들의 불법·편법 영업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비난 여론에 대해서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일부 은행들이 저지른 만행에 은행 전체가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특히 은행이 고객의 신뢰를 담보로 운영되는 만큼 이번 사태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앞으로 여론이 조용해질때까지 내부조직을 좀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최근 민병덕 은행장의 지시로 지난 7월24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든 대출약정과 펀드·정기예금 등 상품판매 과정에서 서류 조작이나 불완전 판매 등 규정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TF는 경영관리 담당 부행장이 위원장을 맡고 실무 부서장들과 팀장급으로 구성했다. 이를 위해 국민은행 영업감사부는 감사역들을 전 영업점에 파견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은행 역시 전 영업점에 중도금 대출서류에 고객들의 자서(차주가 직접 쓰는 것)가 잘 돼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