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부쩍 짧아진 지난 9월12일 서울 테헤란로의 국민은행 지점(메트라이프타워출장소). 저녁 6시가 다 돼 가는데도 이 지점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보통 은행이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4시. 이 시간이 지나면 은행의 셔터는 내려져 있고 고객은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이 지점은 저녁 7시가 돼야 불이 꺼진다. 30~40대 직장인을 위한 특화점포로 낮 12시에 문을 여는 대신 오후 7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보통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 업무를 보곤 하지만 이 시간에는 고객이 많이 몰려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간에 제약을 받다보니 금융상담과 상품가입에 관해 제대로 상담받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문을 연 직장인 특화점포는 저녁 7시까지 영업하는 덕에 직장인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퇴근 후 은행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이 지점에 근무하는 조원진 팀장은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이 활성화됐지만 이러한 비대면 채널도 신규등록을 위해서는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며 "점심시간에만 상담시간이 제한돼 있던 직장인 고객에게는 이러한 특화점포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직장인 특화지점은 고객이 잠시 기다리는 시간도 무료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지점 한켠에 고객 전용 컴퓨터와 태블릿PC 등의 기기를 설치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한 것. 또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고객은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원하는 시간에 상담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지점을 방문한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퇴근 후에 들러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상담할 수 있었다"며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것을 반가워했다. 그는 이 지점에서 인터넷뱅킹 등록을 신청했다.

이밖에 고객 호출 소음을 없애기 위해 '스타벨'을 도입하기도 했다. 창구에 호출음이 들리면 자신의 순번이 됐는지 주시할 필요없이 진동벨을 받아 진동이 울릴 때 안내하는 창구번호로 가서 상담을 받으면 된다.
 
퇴근하고 찾아가는 국민은행 직장인 특화점포

사진_류승희 기자

◆ 직장인 특화상품 위주로 판매

이 지점에서 눈에 띄는 건 일반 열린 창구 외에 폐쇄형 창구가 있는 점이다. 이곳은 예약 고객을 받거나 긴 시간 상담을 원하는 고객에게 제공된다. 특히 재무설계자격증, 혹은 회계·법률 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이 배치돼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한다.

조원진 팀장은 "사내 공모를 통해 전문자격을 갖춘 직원들을 선발했다"며 "고객이 궁금해 하는 것 외에도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해 고급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은 판매하는 상품도 30∼40대 직장인 맞춤이다. 'KB국민 첫재테크적금' 'KB국민 프리미엄 적금' 'KB국민 직장인보너스 체크카드' 등이다. 특히 고객 사이에서는 KB국민 프리미엄적금에 대한 호응도가 높다. 기본금리 3.3%(1년 정액적립 기준)에 5명 이상 가입할 경우 최고 0.6%포인트, 타 상품과 교차 가입 시 0.3%포인트를 우대해준다. 조 팀장은 "직장인 특화점포에서는 퇴근 후 동료들이 함께 가입할 수 있어 이 상품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여유로운 오전, 직원 경쟁 치열

그렇다면 다른 지점보다 늦은 시간인 오후 7시에 마감을 하는 직원들은 어떨까. 의외로 직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늦게 출근하는 만큼 낮 시간을 여유있게 보낼 수 있어서다. 이 지점의 직원들은 높은 경쟁률 끝에 선발됐다.

김혜련 과장은 "주부이다 보니 오전에는 집안을 정리하거나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줄 수 있어 좋다"며 "아이들도 엄마가 데려다 주니 더욱 좋아한다"고 말했다. 신종원 대리는 "오전에 다닐 만한 외국어학원과 헬스클럽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오후 7시에 창구를 마감하더라도 남은 업무처리로 퇴근시간은 더 늦어진다. 하지만 타 지점에 근무하더라도 퇴근 후 저녁시간을 활용하기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 김 과장은 "오전시간이라도 활용하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물론 개인시간 활용에만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전문상담을 할 수 있어 은행원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퇴근하고 찾아가는 국민은행 직장인 특화점포

사진_류승희 기자

◆ 국민은행, 특화지점 개발 '활발'

국민은행은 시중은행 중 특화지점 개발에 가장 열의를 보이고 있다. 대학생 특화지점인 '락스타존'(樂Star Zone)을 시작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편리한 환전과 송금을 위한 '외환송금점포'도 지난해 개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이 점포는 외국인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고려해 주중에 오후 7시까지 영업하는 것은 물론 주말에도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또 결혼이주여성(중국 2명, 베트남 1명)을 채용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편리하게 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김석군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팀장은 "앞으로는 과거에 하던 것처럼 지점을 열고 고객이 필요하면 거래하라는 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객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지점 개설 전 고객을 대상으로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집단면접)를 실시, 직군별로 문화와 생활 패턴을 파악했다. 김 팀장은 "고객 면접분석 결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깊이 있는 상담을 원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고객 니즈가 바뀌고 생활패턴이 바뀌는 것이 은행 지점에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