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3월2일, 파리의 드루오호텔에서 미술품 유통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컬렉터 13명의 모임인 '곰가죽'(the skin of the bear)에서 자신들이 소장 중이던 미술품을 공개적으로 경매한 것이다. '곰가죽 경매'를 이끈 수장은 프랑스의 컬렉터이자 선박유통업에 종사하던 앙드레 르벨이었는데, 그는 젊었을 때부터 미술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작품은 당시 미술품 컬렉션으로 익숙한 작품들이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신진작가' 축에 속했던 역사 속 대가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이었다. 당시 이들은 20∼30대로 작업을 막 시작할 즈음이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시대를 앞서간 특이하고 전위적인 작품으로 여겨졌다. 또한 이 시기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재테크 개념이 생소하던 때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곰가죽 경매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부 작품이 예상가의 10배 이상에 낙찰되는 등 대부분의 작품이 예상가를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고, 이 경매는 미술사에서 컬렉터의 역할과 위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시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아폴리네르 등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한 이 경매를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리고 이 경매는 미술품 투자 성공사례로 기억됨과 동시에 작품에 대한 평가와 상업적 가치가 맞물려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환기시켜줬다.
 
미술품의 가격이 오른다는 게 생소했던 시절, 곰가죽 경매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투자하면 예술적 평가가 상승한 후 작품가도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미술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소더비·크리스티 경매회사의 탄생
 
이렇듯 미술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유통경로가 바로 경매다. 천문학적 가격을 상회하는 국제적인 경매회사의 낙찰소식은 연일 뜨겁게 언론을 달군다. 공개적으로 예술품의 상업적 가치를 가늠하는 경매결과는 전파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딜러와 컬렉터의 존재까지도 수면 위에 드러나곤 한다. 예술작품의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경매는 미술품의 중요한 유통활로로서 그 몸집을 점점 키워가며 세분화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작품을 매매하는 경매의 역사는 짧지 않다. 경매는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 그 윤곽이 드러나긴 했지만,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세기 영국으로 볼 수 있다. 1744년 처음으로 소더비가 문을 열자 1766년 크리스티가 뒤를 이었다.
 
현재는 국제적인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양대산맥을 이루는 경매회사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거액의 작품 거래를 성사시키는 대형 경매사는 아니었다. 먼저 문을 열었던 소더비의 태동은 오래된 중고서적을 경매에서 매매한 것이었다. 영국 서적판매업자였던 사무엘 베이커는 오래되고 희귀한 책을 처분하기 위해 1744년 처음 경매를 시작했는데, 오래된 고서들이 경매라는 새로운 유통의 형태로 거래되며 주목받았다. 이후 소더비는 1778년 존 소더비에게 넘어간 것을 기점으로 현재의 사명을 갖게 됐다.
 
그렇게 소더비가 주로 서적을 매매하던 사이, 현재 세계 최대의 미술품경매회사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크리스티가 문을 열게 된다. 해군장교 출신이었던 제임스 크리스티는 미술품 등을 모아 첫 경매를 성공시켰고, 당시 인기 작가였던 게인즈 보로의 조언으로 미술품 전문경매를 광고하며 미술품 경매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따라서 근대적 경매의 태통은 소더비이지만, 사실상 미술품 경매의 원조격은 크리스티로 볼 수 있다. 미술품과 와인을 주로 취급해온 크리스티는 현재 전세계 주요 미술품의 절반 정도를 거래할 정도로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업체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미술품의 지나친 상업성 '역기능' 우려
 

이후 프랑스 드루오옥션, 미국 아메리칸 아트 어소시에이션, 중국 폴리옥션, 일본 마이니치옥션, 신화옥션 등 국제적인 굴지의 경매회사들이 탄생하며 유통의 통로가 넓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9년 신세계에서 경매가 열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경매가 정착하게 된 것은 1998년 서울옥션으로 볼 수 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200년 이상 맥을 이어오며 경매의 낙찰소식 또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곤 한다. 지난해 5월에는 뭉크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절규>가 세계적인 컬렉터 리언 블랙에 1억1992만달러에 거래된 것을 비롯해 리히텐슈타인 <판화, 거울, 과일이 담긴 그릇의 정물화>는 크리스티 옥션에서 2억5000만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외 잭슨 폴록의 작품과 드쿠닝의 <여인>등도 1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됐다. 국내에서는 서울옥션에서 45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가 국내 작가 중 최고가 낙찰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경매의 통로는 다양하게 진화했다. 고가의 작품만 매매한다는 편견을 깨듯 판화나 신진작가의 중저가 작품을 주로 매매하는 경매회사, 고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경매회사 등 컬렉터의 니즈에 맞게 다양한 타깃을 둔 경매회사들이 탄생했으며 연말 등 특별한 날 갤러리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성 경매문화도 확산됐다.
 
그러나 미술시장의 활황과 침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매는 규모에 따라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미술품이 지나친 상업성에 귀속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상업적으로 직결되는 것과 작품가의 혼선에 대한 위험요소는 경매의 역기능으로 인지해야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경매는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미술품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매매함과 동시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예술작품의 시장성을 알리는 것을 통해 미술품 거래의 대중화에 일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순기능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경매의 역기능을 보완하는 등 자생력 있는 미술품 유통의 활로를 모색하고 진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 프로필
'곰가죽 경매사건' 아시나요?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