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연·영화가 나눠가진 섬
송세진의 On the Road/ 이탈리아 시실리 로맨틱 기행
송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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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 그리스 극장 |
‘시실리를 보지 않았다면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말이다. 시칠리·시칠리아라고도 부르는 이 섬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태리의 보석 같은 섬, 시실리로 떠나보자.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시실리
시실리(Sicily)는 제주도와 닮았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지도의 ‘발’ 끝에 있는 화산섬이고, 풍경이 아름다워 이탈리아 사람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런데 넓이가 꽤 된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이탈리아 20주 중에서 가장 크다. 이 섬 하나가 국토의 12분의 1을 차지한다. 제주와 비교하면 크기가 5배. 큰 섬답게 자랑거리도 많다. 트라파니에는 유럽 최상품의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있고, 부속섬 중 에트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다. 더불어 이탈리아 최대의 와인 산지이기도 하다.
문화유산 또한 풍부하다. 로마는 말할 것도 없고 시라쿠사, 아그리젠토는 그리스 유적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열강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비잔틴, 독일, 프랑스, 지중해와 아랍의 문화까지 뒤섞여 있다. 지리상으로도 남서쪽엔 아프리카의 튀니지, 남동쪽엔 몰타가 위치하고 있다. 역사적인 이유인지, 타고난 기질이 호전적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팔레르모는 마피아의 근거지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이곳을 트리나크리아(라틴어, Trinacria)라고 불렀다는데 오디세이와 단테의 신곡에도 소개돼 있다. 트리나크리아는 시실리를 상징하는 문양 자체를 말하기도 하는데 ‘삼각형’이라는 뜻이다. 메두사 머리에 발이 세개 달린 이 상징물은 시실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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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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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 |
◆낭만의 절벽 동네, 타오르미나
버스는 비탈의 좁은 길을 곡예하듯 올라간다. 버스 종점에 내려 15분쯤 걸어 올라가면 마침내 절벽동네 타오르미나(Taormina)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볼 곳은 꼭대기에 자리잡은 그리스식 극장이다.
비탈에 반원형 모양으로 생긴 이 극장은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극장 나이가 2300년이 넘었다. 그 옛날에, 이 산 위에, 이런 규모의, 이렇게 딱 떨어지는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건가. 압도하는 규모에 크게 한 숨 쉬고 극장을 둘러본다. 자료를 찾아보니 위치와 모양의 사연이 재미있다. 일단, 이 극장에서는 주로 연극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반원 모양이다. 이것은 로마극장이 검투 경기 관람을 위해 타원형인 것과 비교가 된다. 관람석에 앉으니 무대 뒤쪽으로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연기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공연하게 되는 셈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짙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문학의 향연에 빠져들게 되겠다. 그런데 이것도 그냥 지은 설계가 아니다. 연극을 관람하는 중에 바다로 침입하는 적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의 공연은 한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서 그 당시 그리스의 국제 관계가 어땠을 지 짐작하게 된다.
객석에 앉아 손뼉을 쳐 보면 놀랄 일이 하나 더 있다. 박수소리가 맑으면서도 멀리 또렷하게 울린다. 객석 뒤쪽의 이중벽, 아치문, 회랑 같은 것들은 그저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것들이 소리를 모으고 울림을 만들어 결국 최고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야외, 그것도 절벽 위 지붕 없는 극장이라 소리가 다 흩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극장의 기능을 다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도 특별한 날엔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객석은 9열로 나뉘어 있는데 각 열의 이름은 그리스 신에서 따왔다. 그런데 가운데 열은 이름이 없다. 이것은 신중의 신, 제우스의 것이기 때문이란다. 감히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최고의 신이란 말이다.
객석에 앉으면 무대 관람과 바다 구경에 보너스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다 저 너머로 보이는 에트나 화산이 그것.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는 사시사철 눈 덮인 모습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무너진 붉은 벽돌 아래로 바다는 푸르고 깊은 색을 띠는데, 저 멀리 구름이 보여야 할 위치에 뾰족하게 타오르는 흰색의 화산.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공연도 없는 이 폐허 같은 극장에서 자연이 완성한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아름다운 꿈은 시간으로 완성되는가 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1분 1초가 빠르게 흘러가는 곳,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한’ 시간 속에서 추억이라는 보물을 만든다.
그리스 극장의 백일몽 후에는 거리를 둘러본다. 일찍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 탓도 있겠지만 이곳의 지형적 특성과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예쁜 거 좋아하는 성격이 최고의 궁합을 이뤘다. 골목과 계단, 담장에 알록달록 꽃 화분하며, 골목마다 집집마다 색감도 예술이고,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도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산동네의 특성상, 크지 않은 광장에는 성당이 산을 등지고 자리잡았다. 이곳에서도 배산임수가 명당은 명당이다.
19세기부터 예술가들이 왔다고 하니 영감을 주는 동네임이 분명하다. 괴테 역시 이곳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시실리에 왔다면 어떻게든 와봐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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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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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 광장의 성당 |
◆시네마 천국, 시네마 아일랜드
시실리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시네마 천국>, <그랑블루>, <대부>…. 수많은 마니아와 함께 세월을 초월한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앞서 소개한 타오르미나는 <그랑블루>의 촬영지다. <레옹>으로 유명한 뤽 베송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인 장 르노 출연의 이 영화는, 심연으로 돌아간 잠수부의 이야기이다. 시종일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타오르미나의 골목이 스크린에 펼쳐지는데 화면만으로도 감동이다.
그렇지만 시실리하면 역시 <시네마천국>이다. 체팔루와 팔라조 아드리아노가 가장 대표적인 촬영지로 체팔루에서는 주요 바닷가 장면을, 팔라조 아드리아노는 토토의 어린시절과 광장, 극장 등의 주요배경을 촬영했다. 재미있는 건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팔라조 아드리아노에서 어린 토토를 직접 캐스팅 했다는 점이다. 영화를 통해 명성을 얻은 이 아역 배우는 도시로 나가 몇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팔라조 아드리아노에 가면 '어른이 된 토토'를 만날 수 있다.
체팔루는 하얀 모래사장의 낭만적인 바닷가다. 토토가 고향을 떠날 때 배경이 된 기차역도 이곳에 있다. 좁은 골목과 돌길, 산을 등진 알록달록한 집들이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을 일으키는데 이 때문인지 배낭여행자들이 몰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골목길을 걸을 때면 저 즈음에서 어린 토토가 필름 자투리를 들고 튀어나올 것 같다.
시실리는 생각보다 볼 것이 많고 할 것도 많은 곳이다. 영화나 책을 보고 가면 몇배의 감동을 얻어올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본토에 비해 가는 방법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더 가고 싶고,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여행 정보]
● 한국에서 시실리 가는 법
한국에서 직항은 없으며 이태리를 여행하다 시실리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무난하다. 배편을 이용할 수도 있으나, 지역 저가항공의 발달로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는 비행기편이 더 실용적이다. 주변국인 튀니지, 몰타 등으로부터 옮겨오는 여행자도 많은 편이다. 이때에도 지역 항공사를 활용하면 좋다.
유럽 할인항공권 : http://www.europeair.co.kr
와이페이모어 : http://www.whypaymore.co.kr
알이탈리아 항공 : http://www.alitalia.com
에어몰타 사이트 : http://www.airmalta.com
시실리에서 도시간 이동은 기차보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기차는 버스에 비해 연착과 지연이 많은 편이다.
<시실리 섬의 명소들>
카타니아(Catania) : 이태리의 오페라 작곡가 벨리니의 고향이며 마을 전체에 로마 경기장 유적이 있다. 공항이 있고, 타오르미나와 인접해 있어 여행자가 묵어가기 좋은 곳이다.
팔레르모 대극장(Teatro Massimo): 팔레르모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1897년에 문을 연 오페라 극장이다. 이태리에서 가장 크며 유럽에선 세번째로 큰 극장이다. 영화 <대부>의 촬영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트라파니(Trapani) : 유럽 최고의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유명하고, 영화 <그랑블루>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시라쿠사 두오모(Duomo in Syracusa) : 시라쿠사에서는 로마시대의 유적들을 볼 수 있고, 특히 시실리안 바로크 양식의 두오모 성당이 아름답다.
아그리젠토(Agrigento) : 신전의 계곡 지역은 기원전 582년 건설된 그리스 도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콘코르디아 신전, 지오베신전, 카타콤 등 20여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음식, 레스토랑 >
피자 : 피자의 고향답게 어디에나 피자집이 있다. 전체적으로 간은 강한 편이다.
쿠스쿠스: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이 먹던 음식인데, 유럽으로 전해졌다. 아무래도 시실리 섬이 튀니지 가까이 있어서인지 파는 곳이 많다. 쿠스쿠스는 씨앗 모양의, 가장 작은 파스타 종류로 마치 쌀가루로 찐 밥인 듯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본젤라또와 에스프레소 커피 :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간식과 음료다. 어딜 가나 아이스크림 장수와 카페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도 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털어 넣는 반면, 아이스커피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Il Covo de Piarata : 체팔루의 해변가 레스토랑으로 바다가 보이는 창가가 낭만적이다. 가지와 해산물이 들어간 펜네 파스타가 맛있다.
< 여행 및 숙소 예약 >
http://italy.bluetravel.co.kr
https://www.airbnb.co.kr
http://www.tripadvisor.co.kr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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