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파워풀한 '루비족'
패션·건강식품·아웃도어 시장 '쥐락펴락'… 기업들 '러브콜' 후끈

지난달 23일 오전 10시20분 모 홈쇼핑 방송이 '불'났다. 여성을 타깃으로 론칭한 패션의류, 잡화 등이 순식간에 매진행렬을 이어간 것. 100만원이 넘는 무스탕코트의 경우 방송시작 16분만에 품절됐다. 한 프로그램에서만 무려 12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매진행렬을 주도한 이들이 40~50대 여성고객이라는 점이다.

'불황의 시대'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파워풀한 모습을 보이는 세대가 있다.

바로 시간과 여유를 갖춘 '루비족'이다. 루비족은 신선함(Refresh), 비범함(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첫 글자를 따서 조합한 말이다.

경제력을 갖춘 40~50대로 외모와 건강에 관심이 많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중년여성 소비자를 지칭한다.

이러한 '여풍'은 딱히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여성, 특히 '아줌마'들은 정말 강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2년 6월12일에 호랑이에게 물려간 남편을 구하기 위해 두 딸과 같이 몽둥이를 들고 쫒아가 때려잡고 남편을 되찾아왔다는 사례가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아줌마들의, 특히 40~50대 루비족들의 파워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들 루비족은 건강식품과 아웃도어,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등 소비시장에서부터 IT와 금융시장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영역이 없다.

불황에도 파워풀한 '루비족'
◆ 왕성한 소비력 과시하는 '루비족'

루비족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등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 각광받고, 그와 관련한 세간의 관심 또한 높아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전에 반짝 관심을 끌었던 실버시장은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으며 허물어졌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최근 들어 이들의 소비성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한 요소가 혼합돼 있기 때문이다.

현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니즈에 대한 욕구가 다양하다. 또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자산을 '쌓아놓은' 세대와 힘든 취업경쟁을 거쳐야 하고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학자금 대출 등 다양한 빚을 짊어지고 출발하는 세대의 소비활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매출 기여도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신세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30일까지 신세계몰의 패션·잡화·뷰티 부문에서 40대가 올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334.7%, 50대는 425.2%나 급등했다. 또 골프클럽·용품·의류의 경우 각각 197.9%, 323.0% 성장하는 등 40∼50대가 관심을 보이는 품목에서의 소비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

G마켓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올 상반기 주요 카테고리에서 루비족들의 전년 대비 판매증감률을 보면 여성·레저·호텔·항공권이 61%로 가장 많이 늘었고 등산·낚시·캠핑·스키가 55%, 미시캐주얼·여성시니어의류가 50%, 스포츠의류·운동화가 43%, 건강식품·다이어트·홍삼이 36%, 공연·스포츠·영화티켓이 30%, 골프클럽·의류·용품이 24% 순으로 나타났다.

고저차는 있지만 레저분야, SPA, 아웃도어, 건강식품, 문화, 골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구매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의외로 영캐주얼 상품군 등에서 40~50대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SPA브랜드의 경우 여전히 젊은 층의 구매비중이 높지만 40∼50대 여성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10~20% 증가하는 등 점차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1번가 관계자는 "4050세대 여성고객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들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투자한다"며 "확실히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기업들, 마케팅 전략 짜기에 몰두

이처럼 루비족의 소비력이 더욱 왕성해지자 기업들도 바빠졌다. 유통채널 가운데 전통적으로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은 홈쇼핑은 물론, 소비자의 니즈를 읽고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인터넷쇼핑몰도 루비족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홈쇼핑채널인 GS샵은 지난 4월 업계 최초로 50대 고객을 위한 인터넷쇼핑몰인 '오아후'를 오픈했다. 오아후는 '오십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의 줄임말로, 하와이의 오아후섬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쇼핑의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아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카테고리는 신발, 의류, 이·미용, 식품, 건강용품, 패션잡화다. 이들 6개 카테고리가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CJ오쇼핑은 루비족을 위한 패션브랜드인 '에클레어 바이 휘'를 운영하고 있다. '에클레어 바이 휘'는 지난해 방송 평균 3000건에 육박하는 주문건수를 기록하며 1년 간 1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55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루비족의 자기지향적 가치소비는 이·미용품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CJ오쇼핑이 지난해 10월 론칭한 100% 캐비어추출물 화장품인 '르페르'의 경우 30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에도 불구 첫 방송에서 2000세트 완판을 기록하며 7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40~50대가 전체 매출의 5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형주 CJ오쇼핑 상품기획사업부장은 "루비족은 많은 제품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어 성분과 함량을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하는 스마트한 소비층"이라며 "특히 그동안의 가족 위주 소비패턴에서 벗어나 점차 본인을 위한 자기지향적 소비성향을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 더 파워풀한 고객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쇼핑 사이트도 루비족을 잡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G마켓은 오는 8월8일까지 '시니어 패션 기획전'을 진행해 40대 이상 여성들을 위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패션의류를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한다.

G마켓 관계자는 "루비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 세대의 구매물품이 가족을 위한 제품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제품으로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며 "이들 세대는 온라인쇼핑에도 젊은 층 못지 않게 적극적인 만큼 향후 4050세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기획전, 이벤트 등을 다양하게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