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타고 종합물류 '가속'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8월1일 대한항공으로부터 한진칼홀딩스가 분리되면서 한진의 지주회사시대의 막이 열린 것. 이를 통해 핵심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게 조 회장의 노림수다.

조 회장의 이번 결단은 박근혜 정부의 대기업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한 첫 시도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닻을 올린 지금 순풍을 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상반기 환율급등과 일본 수요 감소, 분할효과 등으로 인한 풍파에 휩싸일 수도 있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조 회장의 재량이 발휘될지가 관건이다.

◆한진칼, 석태수 대표 체제로 출항

조 회장의 결단은 올해 초 내려졌다. 지난 3월 조 회장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대한항공을 한진칼홀딩스와 대한항공으로 분할하는 항로를 선택했다. 한진칼홀딩스는 자회사 관리와 그룹의 신규 사업 투자를 맡고,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사업에 집중시키겠다는 것.

조 회장은 이를 통해 핵심사업 집중투자가 가능하고 구조조정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위험 분산 및 사업회사별 독립경영, 객관적인 성과평가를 통한 자율경영도 손에 넣을 작정이다.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모두 제고하겠다는 복안이다.

우선 조 회장은 사업회사인 대한항공과 자회사의 배당금, 브랜드 사용 대가, 보유 부동산 임대수익, 자회사 경영자문 및 교육서비스 등의 수익창출 카드를 펼쳤다. 이와 함께 안정된 수익을 기반으로 그룹 가치 제고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와 자회사 관리 수행에 있어서도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이 과정에서 석태수 한진 대표이사를 한진칼의 수장으로 내세운 점이 눈에 띈다. 석 대표는 그룹 내에서 대표적인 물류 전문가로 꼽힌다. 현재 한국통합물류협회장과 한진그룹 물류연구원장을 맡고 있고, 대한항공 미주지역 본부장 등 그룹 내 주요 직책들을 거치며 역량을 쌓았다.

석 대표에 대한 재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한진-한진해운-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육·해·공 종합 물류라인의 부문별 전문성을 제어하기에 적격이라는 판단이 우세하다. 재계 관계자는 "석 대표는 기존 물류분야에 대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신규 사업 발굴에 최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순환출자 연결고리 끊기 '급선무'

다만 앞으로의 투자와 사업을 위해 순환출자를 버려야 하는 조 회장에게 또 다른 결단이 요구되고 있어 주목된다. 앞서 순환출자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어떤 식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재구성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형국이다.

이로 인해 조 회장이 겪게 될 파고는 높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의 또 다른 결단만 내려지면 어쩌면 이번 지주회사 출범은 쉬운 항해가 될 수도 있다.

조 회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다. 한진칼홀딩스는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해 2년 안에 대한항공 주식 2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신주 발행을 통해 조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보유한 대한항공 주식을 사들이면 문제는 해결된다.

조 회장이 자신이 갖고 있는 대한항공 주식을 한진칼홀딩스에 전부 넘겨도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한진칼홀딩스가 대한항공의 주식 27% 이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진칼홀딩스가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조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나머지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조 회장이 순환출자 고리를 가진 다른 기업들의 합병 결단을 내린다면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이를테면 조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정석기업과 한진이 합병해 이들의 합병기업이 지주회사인 한진칼홀딩스를 지배하고, 한진칼홀딩스가 대한항공을 비롯한 자회사를 거느리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진칼홀딩스 출범 이전에는 대한항공이 정석기업의 최대주주고, 정석기업은 한진을, 한진은 다시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순환출자구조였다. 대한항공은 지주회사 출범을 통해 쥐고 있던 정석기업 주식 48.3%를 한진칼홀딩스에 전부 넘기기로 하면서 순환출자 고리를 빠져나갔다.

◆KAI 인수와 에쓰오일 투자, 어떻게

조 회장은 한진칼홀딩스 출항 이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와 에쓰오일 투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조 회장의 KAI 인수에 대한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KAI는 IMF 외환위기 당시 여러 회사로 흩어져 있던 항공우주사업을 빅딜로 묶은 회사다.

조 회장에게 KAI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건 지난 2003년. 당시 대우종합기계가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을 내놓겠다고 하자 조 회장이 나섰다. 결과는 무산됐다. 이후에도 조 회장은 여러 차례 KAI 인수를 위해 손을 뻗쳤지만 매번 실패했다. 하지만 조 회장의 KAI 인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KAI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는 대한항공의 항공운송사업과의 시너지 때문"이라며 "항공기를 운항하는 동시에 비행기 제작과 정비사업도 키울 수 있다는 이점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조 회장은 에쓰오일에 대한 투자에도 강한 의지를 보인다. 한진그룹은 에쓰오일의 지분 중 28.4%를 보유한 2대주주로 조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1대주주는 지분율 35%를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다.

에쓰오일에 대한 조 회장의 관심은 대항항공이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1~2차 오일쇼크로 직격타를 맞은 이력에서 나왔다. 조 회장은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 회장은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이다.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영업, 정비, IT, 자재, 인사, 총무 등의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2003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임직원에게 던진 첫 일성은 '세계 최고 종합물류기업으로의 도약'이었다. 한진칼홀딩스 출범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지주회사시대를 연 만큼 앞으로 조 회장이 어떤 재량을 보여줄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높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