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금융사가 車보험도 팔겠다고?
“車보험 너무 쉽게 본 거 아냐?”
심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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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업계, 민원 우려 반대…설계사들 “이것마저 뺏어가려 하나?”최수현 금융감독원이 지난 8월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여신금융회사 대표이사 간담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허경 기자
"방카슈랑스처럼 할부금융사 지점에서도 자동차보험을 판매할 수 있게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해보험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할부금융업계가 금융당국에 자동차보험을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손보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설계사조차 자동차보험 고객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과연 할부금융업계가 자동차보험을 제대로 판매,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손보사 입장에서는 판매채널이 늘어나는 것이어서 손해볼 것이 없다"며 "할부금융업계가 전반적으로 상황이 어려워 타개책을 마련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자동차보험을 너무 쉽게 봤다"고 말했다. 이러한 손보업계의 반응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여신업계, "車보험 방카슈랑스 허용해 달라"
지난 8월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초청으로 여신업계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카드사 CEO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는 여신금융업계의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감독당국이 업계의 다양한 수익모델을 창출하라는 주문에 따라 이와 관련된 내용도 전달됐다.
전달된 내용 중 핵심은 할부금융사가 자동차보험을 방카슈랑스를 통해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캐피탈사 지점에서 근무하는 영업사원이 자동차보험을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금융권에서는 할부금융사의 이러한 요청이 극도로 침체된 시장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분석한다.
할부금융사의 실적 하향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2008년 11월 당시 여신금융사의 자동차 금융 취급실적은 6560억원이었으며 자동차 금융 취급대수는 4만3302대였다. 이러한 수치는 전월대비 각각 36.8%, 29.9% 줄어든 것으로 특히 오토론 실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실적 감소추이는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할부금융업계의 어려움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할부금융업계가 불황 타개책으로 자동차보험을 선택한 이유는 연계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비자가 자동차를 1대 사면 자동차할부 금융상품이 판매된다. 이 소비자는 자동차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할부금융사들은 자동차할부 금융상품과 자동차보험을 함께 판매하는 것이 매우 용이해진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할부금융상품과 함께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할부금융의 이자나 자동차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의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판매채널 확대, 그러나 반대"
사실 이 같은 할부금융업계의 요구에 대해 손보사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판매채널이 확대되면서 고객과의 접점이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판매채널 확대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손보업계 관계자들은 할부금융업계의 제안을 반대하고 있다. 방카슈랑스 형식으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더라도 '민원'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에는 원수사인 손보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손보사를 포함한 보험업계의 최대화두는 '민원감축'이다. 소비자보호를 강조하고 나선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민원을 기존보다 50%까지 감축하라고 지시했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단 1건의 민원이라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특히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상품 중 하나다. 교통사고 발생 이후 과실상계와 관련한 민원이 많아서다. 과실상계 분야는 고객에게 돌아가는 보상금 규모가 직접 연관돼 있어 다년간 손보업계에 몸담은 설계사나 보상직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분야다.
보험만을 판매하는 설계사에 비해 할부금융사 직원들은 둔감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할부금융업체가 판매한 이후 발생하는 민원들은 전적으로 손보사 책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책임의식이 떨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도로에서 보내는 손보사 소속 설계사나 보상직원도 민원을 제로(0)로 만들기는 매우 힘들다"면서 "할부금융업계로 자동차보험이 확대되면 민원은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안되는 수수료까지 뺏어가나?"
이 소식이 알려지자 보험설계사 및 대리점들은 수수료 수입이 얼마 되지도 않는 자동차보험마저 뺏어가려 하냐며 발끈하고 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1건당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는 약 7~8%다. 80만원짜리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면 5만6000~6만4000원의 수수료 수입이 돌아간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적은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설계사들이 자동차보험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접근상품이기 때문"이라며 "자동차보험을 통해 수익을 올리기보다는 다른 상품과 연계해 판매하거나 잠재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보험을 할부금융업계에도 개방한다면 경쟁심화로 설계사들의 수입이 급감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험영업조직은 현재 자동차할부금융업계의 요구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일단 단순 건의형식으로 금융당국에 의견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이 현실화될 경우 설계사들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알려져 할부금융업계와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남아있다.
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현재 내부적으로 이와 관련해 대응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보이면 협회차원에서 공식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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