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후 급증하는 이혼율, 줄이려면
‘남’ 만드는 지독한 ‘추석 뒤끝’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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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갈등이 ‘시월드’에서 폭발…‘둘만의 시간’ 꼭 필요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올해 추석연휴는 주말이 이어지면서 5일간의 긴 연휴가 됐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연휴가 됐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곤혹스러운 날이 됐을 것이다.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 추석연휴 첫날인 18일에만 7만9321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 일일 출국자 수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추석연휴기간 동안의 출입국자 수도 70만5549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고향에 갔다 왔어도 시간적 여유가 남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서울과 부산의 호텔 숙박권과 제주도 관련 여행상품을 비롯해 국내 여행상품의 판매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긴 추석연휴에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갈등이 커진 사람들도 있고, 고향의 시부모 댁에서 시댁 식구들과 며칠 지내는 동안 좋지 않은 일이 불거져 긴 연휴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뻔한 가정도 있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연로한 아버지가 연휴 동안 아들이 운전해 함께 여행을 가자고 종용하는 바람에 부부가 아이와 함께 오붓하게 즐기려던 연휴를 망쳤다고 하소연한 사람도 있다. 명절에 아내가 힘들거나 몸이 안 좋은데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준비와 시댁만 챙기는 바람에 화가 난 아내가 싸움 끝에 이혼 청구소송을 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에도 추석연휴 직후 부부간 갈등이나 고부갈등 등으로 평소보다 세배가량 많은 이혼신청 서류가 법원에 접수됐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5일이나 되는 바람에 이혼이 더욱 늘어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설이 1월에 있을 경우 2월과 3월에 이혼이 늘어났다가 4월에는 다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추석이 9월에 있을 경우는 10월과 11월에 이혼이 급증한다.
◆명절 이후 급증하는 이혼율, 왜?
혹자는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명절에 주부가 힘들고 섭섭한 일이 생기더라도 명절연휴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일년에 두번인데, 적당히 참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이혼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직장에서 며칠 야근하며 밤새워 일하거나 직장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 혹은 사업이 안돼 부도위기에 몰려 고통받을 때 아내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때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년에 두번 있는 명절에 집안 일로 힘들 때 남편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아내가 이혼 얘기까지 꺼내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절에 힘들었던 것만으로 이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쌓인 불만과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풀지 못하고 누적됐던 문제가 명절에 확대돼 터지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평소에 없던 불만이 명절에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벌한 대립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가 명절에 생기는 일을 계기로 헤어질 생각을 굳혔다고 봐야한다.
명절에 아내의 남편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폭발해 이혼하는 가정만이 아니라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평소 불만이 폭발해 이혼하는 가정도 생긴다.
결혼 2년차인 B씨(33)도 지난 설 연휴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난 아내와 크게 싸운 후 부부관계를 청산했다. 처가와 자신의 부모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노력해왔지만 서로의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아내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한국일보, 2013.09.11.).
이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아내의 사고방식이 명절에 확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불만은 극복하기 힘든 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명절 후 이혼 건수가 가장 크게 증가한 시기는 지난 2008년 추석이었다. 그해 9월에는 이혼 건수가 6704건이었는데 추석이 지나고 10월이 되면서 9603건으로 43.2%나 늘어났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많은 가정의 경제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혼이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돈이 많이 지출되고 시댁이나 친정 등 가족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평소보다 돈을 더 써야하는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으면 예민해지게 된다.
경제적인 풍요가 늘 부부 사이의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만족스러운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오직 돈 문제로만 이혼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는 명절이나 다른 계기를 통해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부부관계가 악화되기 쉽다.
가정 안에서 일상적으로 부부 사이에 생기는 일에 근거한 불만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이해받기 힘들지만, 명절에 생기는 갈등은 주변인에게 이해받기가 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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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갈등이 원인 되기도
명절에는 종교문제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기독교 교파에서는 제사 참여를 우상 숭배로 여겨 금기시하는 까닭에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의 제사 불참 문제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속앓이를 하는 집안도 있다.
종교가 없거나 불교 성향이 있는 집안에서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평소에는 개의치 않다가도, 떨어져 있던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지내는 뜻깊은 명절의 차례 만큼은 최소한의 형식을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며느리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면 입장을 바꿔보면 기독교 신자인 며느리 또한 명절에는 신앙과 집안의 평화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번민한다.
신앙에 근거해 집안 제사를 거부하는 아내와 아내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제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남편 중 잘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공식적으로 논하는 것이 과거에는 민감한 문제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은 대개 며느리가 제사음식 만들기에는 참여하지만 절은 하지 않는 정도에서 양해가 이뤄진다. 이러한 양측의 암묵적인 타협으로 명절을 무난히 넘기는 가정이 보편적이지만 어느 한쪽에서 암묵적 타협선 이상을 요구하면 상황은 어려워진다.
특히 결혼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크리스찬인 며느리에게 제사가 넘어오게 되는 경우에는 분란이 커지면서 형제들 사이가 나빠지기도 한다. 이혼 위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런 문제를 계기로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종교 때문에 며느리가 조상 제사를 거부해 시댁과 갈등이 생기고 결국 부부 사이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거나 아내가 가출해 부부관계가 파탄나고 이혼소송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이럴 때 법원에서는 '신앙심의 외부적인 실천행위가 혼인 및 가정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것일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판단한다. 설날에 제사를 안지내고 교회에 간 아내를 상대로 한 이혼판결이 나온 사례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제사거부를 이혼 사유로 본 것은 아니다. 제사 문제 이전에 이미 부부관계가 극심하게 악화돼 회복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나온 판결이다.
연휴는 피곤하고 힘든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났다가 활기차게 사회생활과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돼야 한다. 하지만 연휴 중에서도 명절은 평소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던 가족 친지들이 많이 모이고 명절이라는 특수성에 따르는 형식의 문제도 생기는 때라서 자칫하면 사람 관계에 의한 악성 스트레스가 생기기 쉽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즐겁고 좋았던 순간에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상대방은 참으면서 넘어간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는데, 이는 본인의 입장에서만 그럴 뿐이다. 일시적으로 불어난 강물을 무사히 건너가는 사람도 있지만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상대방은 쉬울 수도 있고, 내가 보기에는 당연한 일이 상대방은 불만스럽고 힘들 수도 있다. 자신부터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긴 명절연휴 동안 외부요인이 작용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자신은 무심하게 넘어간 스트레스가 상대방 마음에는 행여 앙금으로 남아 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명절 이후 반드시 풀어야 한다. 연휴에 부부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가정 전체를 위해 명절에 지출한 돈이 꽤 되더라도 명절 이후 서비스 차원에서 오직 부부만을 위한 시간과 돈을 별도로 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올해부터라도 명절 이후 이혼율이 급증하지 않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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