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퇴출위기 '혼다의 굴욕'

한때 수입차시장을 호령했던 혼다가 국내 상륙 10년 만에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 2008년 수입차 브랜드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혼다는, 이후 진화 아닌 퇴보를 거듭한 끝에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현재는 10위권 밖으로 떨어져 사실상 꼴찌로 전락한 상태다.

혼다 브랜드의 급격한 침체는 전신인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 시절부터 13년간 혼다코리아를 이끌어온 정우영 사장의 경영 방침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시장 점유율 12%를 돌파하며 수입차업계가 연일 승승장구 중인 와중에 혼다만이 '나 홀로 위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출시 10주년을 기념할 여력조차 없는 혼다의 퇴출 위기 상황을 들여다봤다.

◆부동의 1위에서 꼴찌로

2004년 국내 전 차종 판매대수 1475대로 시작한 혼다는 이후 2005년 2709대, 2006년 3912대로 출시 초반부터 기세가 등등했다. 반도 상륙 5년 만인 2008년엔 1만2356대를 팔아치우며 수입차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당시 혼다의 시장 점유율은 무려 20.04%. 현재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BMW의 점유율이 13.62%에 불과했으니 혼다의 당시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혼다는 출시 초기상태로 역주행하고 있다. 1위를 기록한 다음해인 2009년 바로 4905대를 기록하며 급추락을 하더니 이후 반전을 이루지 못한 채 2013년 9월 집계기준 3913대로 주요 수입차 브랜드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차종별로 살펴보면 혼다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 연식이 변경돼 판매가 중단되거나 단종된 모델만 다섯 종류다.

어코드·CR-V와 함께 혼다의 대표차종인 시빅은 2.0 모델이 2010년 이후 100대 미만의 판매고를 올리다 연식 변경으로 출시가 중단됐다. 시빅 1.8 역시 LX와 EX로 나뉘어 새롭게 판매 중이지만 작년 1대에 이어 올해 147대의 판매량만을 기록 중이다.

인사이트는 4년 동안 538대 판매를 기록하고 올해부터 단종됐다. 2011년 야심차게 출시한 CR-Z 역시 단 한해도 100대 이상의 판매를 올리지 못한 채 올해 단종됐다. 어코드 3.0과 레전드는 이제 국내에서 만나볼 수 없는 모델들이다.

크로스투어, 오디세이, 파일럿 등 대형 SUV 모델들도 작년 출시 이후 2년간 각각 104대, 307대, 112대만을 판매하며 단종 위기에 놓여있다.

혼다의 패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는 국내 소비자들의 요구에 제때 반응하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현재 국내 수입차시장은 디젤 차량이 대세로 자리매김 중이다. 디젤 모델을 줄곧 출시하며 힘을 쏟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브랜드들이 2009년부터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소비자 니즈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국산완성차업계와 타 일본브랜드는 하이브리드에 힘을 실어왔으며 최근에는 전기차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주행능력 못지않게 연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요즘, 가솔린 차량은 점차 인기가 시들해지는 상황이다.

반면 혼다는 이러한 소비패턴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디젤 차량은 단 한 모델도 출시하지 않은 채 가솔린 모델만 고집했다. 지금도 혼다 측은 “디젤 차량의 국내 도입 계획은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다”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 2007년 출시한 시빅 하이브리드가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단종 위기에 놓여있다. 7년 동안 고작 657대만을 파는 데 그쳤으며, 올해는 단 4대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전기차 출시 소식 역시 국내에선 전무하다.

◆한국시장은 안중에도 없다?

문제는 극심한 판매부진이 몇년째 이어오는 과정 속에서도 회사 내부적인 성찰이나 계획, 대처방안 등이 전혀 모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시장에서의 실적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묻자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힘든 게 사실이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계획의 핵심 요소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는 엉뚱한 대답이 이어졌다.

외국에 브랜드를 론칭하는 회사가 맞춤형 전략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투자 가치를 굉장히 낮게 보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을 동아시아시장 공략의 거점지로 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주요 수입차업체들의 행보와는 확연히 다른 혼다의 자세다.

혼다코리아의 국내 서비스센터는 단 9곳뿐. 이는 BMW 38곳, 벤츠 33곳, 아우디 20곳 등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심지어 강원도와 전라북도 등 일부 지역에는 서비스센터가 한곳도 없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실정상 당분간 서비스센터 신규 건립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협력점과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대체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차 구입을 고려할 때 서비스센터와 같은 인프라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혼다의 이러한 현실은 향후에도 판매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혼다의 판매부진은 곧 딜러사들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 딜러사의 경우 경영악화로 인해 혼다코리아와 갈등을 겪다 수개월째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는 지난 6월 차량 판매를 담당하는 A딜러사와의 계약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 60여명의 딜러사 직원들이 실업자가 될 상황에 처하면서 ‘갑의 횡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A딜러사 관계자는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딜러사 상당수도 적자에 시달리고 연체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혼다는 딜러들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총체적 난국에 시달리고 있는 혼다는 올 하반기 역시 새로 출시하는 모델 없이 지난해 연말 선보인 모델들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한국 출시 10주년 기념 판촉행사도 진행 중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때 명품 수입차의 대명사였지만 혼다는 최근 국내 맞춤형 전략부터 신차 출시, 소비자 욕구 충족, 딜러사와의 협업 등 모든 면에서 ‘0점짜리’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국내에서 퇴출당한 미쓰비시나 스바루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10년의 고비를 넘기자마자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지 않기 위해선 국내 소비자들의 등을 다시 돌릴 수 있는 특단의 자구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