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마저 올인하는 '베팅의 쾌락'
은밀하게 거대하게 핀 사행산업/ '정신의 癌' 도박에 빠져드는 이유
배현정 기자
24,301
2013.12.03 | 0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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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아버지께서 도박에 빠져서 전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여기저기 끝도 없는 빚에 아파트도 팔고 우리 가족이 죽다 살아났지요. 그때는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제가 노름에 빠졌네요. 며칠 시체처럼 누워서 죽을 생각만 하다가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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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주요 연관 검색어 중 하나는 자살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도박과 관련된 자살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전국 자살률 1위 도시도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도다. 강원도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1년 45.2명으로 서울시의 26.9명보다 거의 2배가량 높다.
한번 빠지면 전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 삼켜버리는 도박의 치명적인 '늪'. 대한민국 5000만 인구 중 약 60만명(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도박중독자 수. 2013년 국감자료)이 그 헤어 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져있다.
◆ 도박, 뇌 변화 초래…'억' 잃어도 인식 못해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규모는 날로 확대되는 추세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사행산업 관련 통계'를 보면 사행산업 이용객수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종목별로 많게는 10배까지 급증했다. 카지노 이용객은 157만명에서 508만명으로, 경정 이용객은 45만명에서 339만명으로 늘어났다.
사행산업 매출액도 2002년 12조7000억원에서 2011년 18조3000억원으로 44.1% 급증했다. 불법 도박산업의 규모는 이러한 합법규모보다 4배는 더 많은 80조원에 가까운 규모로 추산된다.
사행산업이 번창하면서 도박 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급속히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병적 도박으로 인한 진료 인원은 2007년 519명에서 2011년 706명으로 7약 40%나 늘었다. 진료비는 2007년 4억원에서 2011년 8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도박이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황폐화하는 것은 물론 끔찍한 범죄로도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인천의 모자살해사건 역시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일으킨 범죄였다. 지난 10월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범죄현황을 분석한 결과 도박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최근 3년간 4738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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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도박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이 도박의 늪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도박이 주는 '극도의 쾌락' 때문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도박에 빠지면 뇌에 변화가 일어난다"며 "도박을 할 때만 뇌에서 강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은 중요하지 않게 치부하고 통제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도박이 주는 긴장감과 희열, 좌절을 거듭하며 온종일 도박생각만 하게 된다는 것. 또한 도박을 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 큰 강도의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지난번에는 100만원의 내기에 쾌감을 느꼈다면 이번에는 1000만원을 거는 식으로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스페인 그라다나대학 연구팀도 도박과 관련한 흥미로운 결과를 내놨다. 도박에 중독되면 충동을 조절하는 뇌 부분인 전두엽의 이상 때문에 손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연구팀은 "뇌 이상으로 수억원을 잃어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박에 과몰입 되지 않으려면 도박에 대한 의식전환부터 해야 한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홍보 관계자는 "도박의 짜릿함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도박의 결과에 상관없이 뮤지컬이나 스포츠경기를 관람할 때처럼 적정한 비용과 시간 안에서 즐기고, 도를 벗어나면 재정적 부담은 물론 삶 자체가 황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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