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금호가 형제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한동안 경영권을 놓고 다투더니 지난해 초에는 상표 사용권을 놓고 싸웠다. 최근에는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박찬구 회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의 다툼은 몇년전부터 그래왔듯 예견된 상황이었다.

◆깨져버린 형제의 '화합경영'

사실 금호가 형제들은 '화합경영'의 모델이었다. 1984년 박인천 창업주가 타계하자 장남인 고 박성용 회장이 그룹 2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고 박성용 회장은 그룹 50주년을 맞은 1996년 바로 아래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형제와 친족 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경영계에 교훈이 될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2002년 고 박정구 회장이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뜰 때도 마찬가지였다.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룹 화학부문을 맡았던 4남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과의 갈등이 있기 전까지 형인 박삼구 회장에게 누가 될까봐 뒤에서 묵묵히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금호가의 형제경영은 고 박인천 창업주가 생전에 그룹 경영원칙을 세우고 2세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 데서 비롯됐다. 특히 이 원칙은 박삼구·찬구 회장의 다툼이 시작되기 전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구조에서 잘 나타났다. 2세 경영인 중 회사경영과 무관한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4명의 형제가 당시 지주회사 역할을 했던 금호석화의 지분을 9.24%씩 동일하게 갖고 있었다. 2세들이 작고하면 이 지분은 고스란히 3세 경영인들에게 상속돼 지분구조를 둘러싼 분란이 생길 틈이 없었다.

하지만 금호가 형제의 '화합경영'은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두 회사를 인수한 이후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다시 팔아야 할 지경에 처하자 갈등이 커진 것이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 주식을 사들이자 박삼구 회장도 주식 매입에 나섰다. 형제들이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는 전통이 깨지면서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치고 받는 다툼 '점입가경'

박삼구·찬구 회장의 갈등의 불씨는 이후 점점 크게 타올랐다.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본인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10년 채권단 중재로 이들 형제가 경영에 복귀했지만 이미 그룹은 갈라진 뒤였다. 더구나 2011년 박찬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을 때 박삼구 회장이 고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형제의 다툼은 극에 달했다.

지난해 벌어진 상표권 다툼 역시 형제간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든 사건이다. 금호(錦湖)는 고 박인천 창업주의 호다. 2007년 3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산업과 금호석화의 양대 지주회사로 갈리면서 금호 상표권을 두 회사가 함께 등록했다. '금호 상표 권리는 공동소유지만 실제 권리는 금호산업에 있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근거해 금호석화는 상표 사용료를 금호산업에 지불해왔다.

하지만 2009년 박삼구·찬구 회장의 경영권 분쟁으로 금호석화는 2010년부터 금호산업에 상표 사용료 지급을 중단했다. '금호 상표 소유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화가 절반씩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급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금호산업은 금호석화, 금호피앤비화학 등에 지불할 기업어음(CP) 58억원을 주지 않고 상계처리하면서 형제간 다툼이 다시 일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초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주총에서 일부 사내이사 후보들의 선임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또 한번 분쟁이 벌어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도 아시아나항공이 경영 정상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단초가 됐다.

앞서 금호석화는 2012년 3월 아시아나항공 주총에서도 박삼구 회장에게 제3자 유상증자를 우선 배정할 수 있다는 의안에 반대했다. 다만 지난해 주총에서는 모든 안건이 반대 없이 통과됐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30.1%를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화도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끝나지 않는 금호家 '갈등'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이들 형제의 다툼은 지난 3월27일 열린 아시아나항공 주총장에서 벌어졌다. 금호석화가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고 나선 것. 박삼구 회장은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당시 금호산업에 790억원, 금호타이어에 240억원을 지원하도록 결정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사내이사로 선임해선 안 된다는 게 금호석화 측 주장이다.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금호석화에 대해 의도적인 '그룹 흠집내기'라며 반박했다.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따라서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대표이사를 맡는 것이 타당하고 자연스럽다는 게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의 주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채권단과 협의 하에 진행됐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사안으로 금호석화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호석화는 지난 3월25일 아시아나항공에 금호산업의 주총 의결권 행사 금지 등에 대한 요청 공문을 보냈다. 당시 금호석화 측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주총을 강행해 비정상적 거래에 의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주총 결의에 대해 법적대응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박삼구 회장은 지난 3월27일 주총에서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로 일단 복귀했다. 금호석화도 예정대로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사이좋던' 금호가의 박삼구·찬구 형제의 갈등은 화해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한 채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