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가 저가 중국산 철강재 퇴출에 나섰다. 안전성이 검증된 건설용 철강재 사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 특히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가 국산으로 둔갑해 국내에 유통되면서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짝퉁 철강재가 불러온 참사

저가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에 무분별하게 유통되자 철강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철강사는 지난 9월24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열린 ‘2014 국제 철강 및 비금속산업전’에 참가해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번 전시회는 포스코, 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 세아제강, 세아베스틸, 고려제강, TCC동양, 일진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이 함께 했다.

실제로 저가 중국산 철강재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와 울산 물탱크 폭발 사고 등의 원인으로 지적된 바 있다. 지난 2월 경주에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은 눈이 내리면서 샌드위치 패널 구조(조립식)로 지어진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체육관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학생들과 이벤트 직원 등 총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원인 중 하나는 중국산 짝퉁 철강재 사용이었다.


 

부식된 중국산 부실 철강재 /사진=머니투데이DB
부식된 중국산 부실 철강재 /사진=머니투데이DB

또 지난해 7월 울산 삼성정밀화학 부지 내 폴리실리콘 생산공장 신축현장에서는 1400톤 의 물탱크가 터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도 저가 중국산 자재 사용이다. 물탱크 이음 공사를 맡은 하도급 협력업체는 개당 550원짜리 고장력 볼트 대신 260원짜리 중국산 볼트를 사용했다. 해당 업체는 100만원 정도의 자재비를 아꼈지만 결국 현장 근로자 3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를 초래했다.

이처럼 규격 미달인 저가 중국산 철강재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산 짝퉁 철강은 상대적으로 감리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소규모 빌라 공사나 공장 건축 현장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은 마치 ‘시한폭탄’을 품은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롤마크가 위조된 중국산 부적합 철강재가 국산으로 둔갑한 채 국내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국민이 위험에 방치돼 있다”며 “개별 철강업체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국산 철강재(H형강) 비교 /사진=머니투데이DB
중국산 국산 철강재(H형강) 비교 /사진=머니투데이DB

◆국내 시장 삼키는 중국산

그런데도 저가 중국산 철강재들의 국내 수입 비중은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다. 범람하는 저가 중국산 철강재로 인한 철강업계의 시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달간 철강재 수입량은 171만6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늘었다. 올해 1~8월 누계 수입량은 1481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증가했다. 외국산 철강재 수입 증가 현상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철강이 무서운 기세로 국내 시장을 삼키고 있다.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올해 1~8월까지 862만5000톤이다. 지난해보다 31.1%나 증가한 수준이다. 더구나 국내로 들어온 수입 철강재 물량의 58.2%에 달한다. 자국 내에서 과잉생산으로 남아도는 물량을 밀어내기 식으로 국내에 판매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지난 2002년 미국이 전세계 철강사를 상대로 철강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할 당시 수입 철강재 점유율은 30% 수준에 불과했다”며 “주요 철강생산국 중에서 자국 시장의 수입 철강재 점유율이 35%를 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철강업계는 생존 불능 상태에 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진=뉴스1 김영진 기자
지난 2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진=뉴스1 김영진 기자

◆유통과정마다 철저히 검사해야

앞서 지난 9월18일 열린 철강산업 발전 포럼에서도 철강업계, 수요업계, 철강관련 학계, 정부 등 유관기관 관련인사 200여명이 머리를 맞댔다. 중국과의 공정한 철강무역 질서 확립과 건전한 철강 소비문화 정착시켜야 한다는 게 포럼의 핵심이었다.

이날 오일환 철강협회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670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 급증하면서 국내 철강시장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특히 보론 첨가강으로 둔갑한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은 국내 철강시장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중국과의 공정한 철강무역 질서 확립과 건전한 철강 소비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앞서 관세청은 지난 6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원산지 표시 실태를 단속하고 20개 업체, 997억원 상당의 위반사례를 적발했다. 중국산 열연 강판의 원산지를 처음부터 표시하지 않거나 단순가공 후 원산지 표시 없이 판매한 것이 문제였다. 또 아연 도금 강판에 부착된 원산지 표시 라벨을 제거한 뒤 새로운 상표를 부착한 경우도 발견됐다. 중국산 H형강은 원산지 표시를 손상시키거나 떨어지기 쉬운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한 사례도 적발됐다.

최근 철강협회는 ‘철강산업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철강재의 원산지 및 품질검사증명서(MTC)를 확인할 수 있는 QR시스템 ‘큐리얼’(QReal)을 도입했다. 철강사들도 지난 7월 초 자사 롤마크가 찍힌 중국산 짝퉁 철근을 불법 수입해 유통한 수입업체를 고소하는 등 저가 중국산 철강재들의 범람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이 같은 노력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롤마크는 중국에서 제조할 때부터 찍어서 나올 수 있다. 품질검사증명서의 QR코드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이에 철강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산 철강재를 수입할 때부터 건설현장에서 사용될 때까지 매 유통 단계마다 철저히 검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우선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기술표준원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 인증 받은 품질검사전문기관들이 나설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도 필요하다. 건설 현장 표지판에 공사명·발주자·시공자·공사기간뿐만 아니라 원산지까지 표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품질검사시험성과표의 위·변조를 차단하기 위한 시험성적 인증제 도입도 시급한 실정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