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소맥’ 이을 제2의 국민술은?
대한민국 酒史가 흔들린다 / 혼합주 변천사
정채희 기자
12,084
공유하기
편집자주
'음주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던 대한민국. 이제 '부어라, 마셔라'를 외쳤던 폭주문화는 가고 '가볍고, 간단하게' 마시는 스타일이 대세다. 우리나라도 술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나라가 되는 것일까. <머니위크>가 대한민국 음주문화의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아울러 흔들리는 주류시장도 분석했다.
"콸콸콸콸, 슝~ 탁!" 듣기만 해도 목울대가 움직이는 이 소리는 '혼합주'(믹싱주)를 표현하는 의성어다. 따르고, 섞어 돌리고, 내려놓으면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 나만의 술이 완성되는 것. 술맛을 내기 위해 혹은 술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자칭·타칭 '술전문가'들은 오늘도 술에 술을 탄다. 성인 1인당 연간 소주 소비량이 98병, 맥주는 119병에 달하는 나라에서 전문가도 모르는 혼합주가 하루에도 수십여개 탄생하는 것은 당연지사.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은 국민주가 된 지 오래다. 소맥에 콜라까지 섞은 '고진감래주', 소맥에 백세주와 산사춘을 더한 '소백산맥주' 등 신흥강주(酒)들이 제2의 국민주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포장마차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혼합주부터 전문 바텐더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칵테일까지, 혼합주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바닷물에 말젖까지… 술에 더한 상상
술은 발효주, 증류주, 혼성주로 구분되는데 칵테일, 우리말로 혼합주는 혼성주에 속한다. 혼합주는 와인에 매실주를 섞듯이 각종 주류를 기본으로 과일주와 시럽, 향신료 등을 혼합해 독특한 맛과 신선한 향을 내는 혼합음료를 의미한다.
이 독특한 술은 어디에서 왔을까. 혼합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시간을 같이한다. 한국바텐더협회(KABA)에 따르면 기원전부터 이집트에서는 맥주에 꿀이나 대추, 야자열매를 넣어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포도주에 바닷물이나 나뭇진(樹脂)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포도주에 말의 젖(馬乳)을 혼합한 유산균 음료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며 1180년대에는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물과 도수가 낮은 술에 꽃과 식물을 섞어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칵테일의 탄생 시기는 지난 18세기 중엽이다. 애주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마티니(Martini)나 맨해튼(Manhattan)도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술에 과일과 물, 설탕 등을 더한 이 짬뽕 술은 1차 세계대전 미군부대에 의해 세계에 전파된 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적인 음료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키싱주', '피바다주'… 폭탄주의 무한변신
한국인이 즐겨 찾는 혼합주는 단연 '소맥'이다. 주류제조업체인 보해양조가 한국인이 즐겨 찾는 혼합주를 조사한 결과 소맥을 택한 이가 38%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오죽하면 황금비율로 제조해준다는 '소맥잔'이 탄생했을까.
소맥잔이 없다고 해서 소맥의 황금비율을 따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준비물은 병소주와 병맥주 단 2개. 각각의 병 입구가 들어맞도록 소주병 위에 맥주병을 세우고 입구가 딱 맞닿을 때까지 잡고 있다 보면 두 병 사이에 기포가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약 7분여가 지나면 기포는 사라지고 부드럽고 맛있는 이른바 '맥주와 소주의 키싱 타임주'가 탄생한다.
소맥의 명성을 위협하는 혼합주도 많다. 현재 주류업계에 몸 담고 있는 강유미 외 3인은 지난해 7월 <취하는 책>을 내고 다양한 폭탄주 제조법을 전수했다. 예컨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처럼 쌉싸래한 맛으로 시작해 달콤한 맛으로 끝나는 폭탄주 '고진감래주'는 소맥에 콜라를 탔다. 개인에 따라 섞는 양은 다르겠지만 500ml잔에 소주잔을 넣고 그 안에 3분의 2만큼 콜라를 채운 뒤 소주잔에 소주를,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채우는 것이 황금비율로 알려졌다.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소원을 말해 봐'도 있다. 소주잔에 소주와 원두커피를 1 대 5 비율로 넣으면 맛있는 원두커피주가 나온다. 가수 소녀시대의 노래가사를 생각나게 하는 술의 명칭은 '새끼손가락'으로 혼합주를 휘젓는 것에서 따 왔다.
이 책은 달달한 혼합주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을 위해 '카운터펀치주', '피바다주', '네버엔딩드링킹주'도 소개했다. 공격적인 명칭과 달리 술잔 안에 맛과 멋을 동시에 담았다. 소맥에 매화수를 섞은 카운터펀치는 매실의 향긋한 향이 포인트다. 색깔도 은은해 만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피바다주 또한 붉은 복분자주가 서서히 퍼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맥주잔에 양주 스트레이트잔을 넣고 스트레이트잔이 가라앉지 않게 주의하며 맥주잔에 맥주를 따른다. 부력으로 둥둥 떠 있는 스트레이트잔에 복분자를 넣은 후 그 위에 소주를 부으면 마치 하나의 작품 같은 피바다주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가하면 재료만 들어도 인상이 찡그려지는 '엽기주'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음주를 즐기기 전 우유를 마시면 숙취에 좋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유에 소주를 타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흰 우유부터 초코·바나나·딸기우유까지 모든 우유로 혼합주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유소주는 엽기주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 지난 2012년 독특한 폭탄주로 TV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한 여성은 소맥에 산낙지와 바나나를 넣고 식초를 부은 '낙지 다이어트주'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중들은 폭탄주에 열광하지만 주류전문가는 대중의 상상대로 섞어 마시는 혼합주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칵테일 전문교육원의 김두연 국제칵테일학원 강사는 "일반적으로 술은 혼합해서 마시는 것보다 하나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며 "2~3개를 섞어 마시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7~8가지를 혼합하는 등 개수가 늘어날수록 알코올 도수도 올라가게 돼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강사는 특히 "콜라와 같은 탄산수와 이온음료의 경우 몸의 흡수율이 빨라 알코올의 흡수율을 높인다"며 "폭탄주의 경우 마실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알코올이 흡수돼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음료의 성질과 체질에 따라 혼합주를 다르게 마셔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연장 탓 하지 마라" 황금비율, 맛 좌우
이처럼 다양한 혼합주가 있지만 사실 술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손맛'이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누가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결정된다는 소리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포항 쏘맥 이모'라 불리는 한 여성이 화제를 모았다. 맥주병을 따는 모습부터 폭탄주를 제조하는 과정까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솜씨로 누리꾼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녀만의 폭탄주 제조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서울은 물론 해외에서도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섭외요청이 폭주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모두가 포항 쏘맥 이모가 될 수는 없는 법. 손기술도, 황금비율도 도저히 모르겠는 이들에게는 전문가가 직접 제조해주는 칵테일을 추천한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술로 만든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랑을 칵테일처럼 섞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오늘 저녁, 혼합주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은 어떨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은 국민주가 된 지 오래다. 소맥에 콜라까지 섞은 '고진감래주', 소맥에 백세주와 산사춘을 더한 '소백산맥주' 등 신흥강주(酒)들이 제2의 국민주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포장마차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혼합주부터 전문 바텐더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칵테일까지, 혼합주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 |
◆바닷물에 말젖까지… 술에 더한 상상
술은 발효주, 증류주, 혼성주로 구분되는데 칵테일, 우리말로 혼합주는 혼성주에 속한다. 혼합주는 와인에 매실주를 섞듯이 각종 주류를 기본으로 과일주와 시럽, 향신료 등을 혼합해 독특한 맛과 신선한 향을 내는 혼합음료를 의미한다.
이 독특한 술은 어디에서 왔을까. 혼합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시간을 같이한다. 한국바텐더협회(KABA)에 따르면 기원전부터 이집트에서는 맥주에 꿀이나 대추, 야자열매를 넣어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포도주에 바닷물이나 나뭇진(樹脂)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포도주에 말의 젖(馬乳)을 혼합한 유산균 음료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며 1180년대에는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물과 도수가 낮은 술에 꽃과 식물을 섞어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칵테일의 탄생 시기는 지난 18세기 중엽이다. 애주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마티니(Martini)나 맨해튼(Manhattan)도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술에 과일과 물, 설탕 등을 더한 이 짬뽕 술은 1차 세계대전 미군부대에 의해 세계에 전파된 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적인 음료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키싱주', '피바다주'… 폭탄주의 무한변신
한국인이 즐겨 찾는 혼합주는 단연 '소맥'이다. 주류제조업체인 보해양조가 한국인이 즐겨 찾는 혼합주를 조사한 결과 소맥을 택한 이가 38%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오죽하면 황금비율로 제조해준다는 '소맥잔'이 탄생했을까.
소맥잔이 없다고 해서 소맥의 황금비율을 따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준비물은 병소주와 병맥주 단 2개. 각각의 병 입구가 들어맞도록 소주병 위에 맥주병을 세우고 입구가 딱 맞닿을 때까지 잡고 있다 보면 두 병 사이에 기포가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약 7분여가 지나면 기포는 사라지고 부드럽고 맛있는 이른바 '맥주와 소주의 키싱 타임주'가 탄생한다.
소맥의 명성을 위협하는 혼합주도 많다. 현재 주류업계에 몸 담고 있는 강유미 외 3인은 지난해 7월 <취하는 책>을 내고 다양한 폭탄주 제조법을 전수했다. 예컨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처럼 쌉싸래한 맛으로 시작해 달콤한 맛으로 끝나는 폭탄주 '고진감래주'는 소맥에 콜라를 탔다. 개인에 따라 섞는 양은 다르겠지만 500ml잔에 소주잔을 넣고 그 안에 3분의 2만큼 콜라를 채운 뒤 소주잔에 소주를,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채우는 것이 황금비율로 알려졌다.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소원을 말해 봐'도 있다. 소주잔에 소주와 원두커피를 1 대 5 비율로 넣으면 맛있는 원두커피주가 나온다. 가수 소녀시대의 노래가사를 생각나게 하는 술의 명칭은 '새끼손가락'으로 혼합주를 휘젓는 것에서 따 왔다.
이 책은 달달한 혼합주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을 위해 '카운터펀치주', '피바다주', '네버엔딩드링킹주'도 소개했다. 공격적인 명칭과 달리 술잔 안에 맛과 멋을 동시에 담았다. 소맥에 매화수를 섞은 카운터펀치는 매실의 향긋한 향이 포인트다. 색깔도 은은해 만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피바다주 또한 붉은 복분자주가 서서히 퍼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맥주잔에 양주 스트레이트잔을 넣고 스트레이트잔이 가라앉지 않게 주의하며 맥주잔에 맥주를 따른다. 부력으로 둥둥 떠 있는 스트레이트잔에 복분자를 넣은 후 그 위에 소주를 부으면 마치 하나의 작품 같은 피바다주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가하면 재료만 들어도 인상이 찡그려지는 '엽기주'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음주를 즐기기 전 우유를 마시면 숙취에 좋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유에 소주를 타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흰 우유부터 초코·바나나·딸기우유까지 모든 우유로 혼합주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유소주는 엽기주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 지난 2012년 독특한 폭탄주로 TV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한 여성은 소맥에 산낙지와 바나나를 넣고 식초를 부은 '낙지 다이어트주'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중들은 폭탄주에 열광하지만 주류전문가는 대중의 상상대로 섞어 마시는 혼합주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칵테일 전문교육원의 김두연 국제칵테일학원 강사는 "일반적으로 술은 혼합해서 마시는 것보다 하나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며 "2~3개를 섞어 마시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7~8가지를 혼합하는 등 개수가 늘어날수록 알코올 도수도 올라가게 돼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강사는 특히 "콜라와 같은 탄산수와 이온음료의 경우 몸의 흡수율이 빨라 알코올의 흡수율을 높인다"며 "폭탄주의 경우 마실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알코올이 흡수돼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음료의 성질과 체질에 따라 혼합주를 다르게 마셔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연장 탓 하지 마라" 황금비율, 맛 좌우
이처럼 다양한 혼합주가 있지만 사실 술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손맛'이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누가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결정된다는 소리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포항 쏘맥 이모'라 불리는 한 여성이 화제를 모았다. 맥주병을 따는 모습부터 폭탄주를 제조하는 과정까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솜씨로 누리꾼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녀만의 폭탄주 제조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서울은 물론 해외에서도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섭외요청이 폭주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모두가 포항 쏘맥 이모가 될 수는 없는 법. 손기술도, 황금비율도 도저히 모르겠는 이들에게는 전문가가 직접 제조해주는 칵테일을 추천한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술로 만든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랑을 칵테일처럼 섞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오늘 저녁, 혼합주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것은 어떨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