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어느날. 그날도 한주당씨(가명·당시 20살)는 대학선배들과 단골 호프집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6월 기말고사 기간이었지만 하늘같은 선배가 부른 자리인 만큼 싫은 내색조차 금물이다. 분위기가 조금 처지자 여지없이 술 먹기 게임에 돌입했다. "쿵쿵따리~쿵쿵따." 당시 국민게임이었던 '쿵쿵따'의 경쾌한 장단이 이어지는 동안 소주병은 수북이 쌓여갔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다잡는 한씨. 끝까지 함께 술을 마셔야 '착한 후배'고, 중간에 쓰러지거나 술을 거부하면 '나쁜 후배'라는 진리를 한씨는 잘 알고 있었다. 착한 후배가 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버틴 한씨는 결국 그날 밤 급성 위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2. 2014년 10월2일. 아침 출근길부터 왠지 기분이 좋은 한주당씨(32)는 모처럼 후배들과 회식을 계획한다. 마침 다음날이 빨간날(개천절)이기도 하니 어디 한번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보리라. 하지만 후배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선배, 죄송해요. 오늘은 선약이…", "내일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해서요." 결국 남은 건 신입사원 A군과 다음주 결혼식을 앞둔 B양뿐. 조촐한 회식이 시작됐다. 폭탄주 마니아 한씨가 소주 1병과 맥주 2병을 주문하려는 찰나, B양이 한씨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그냥 소주만 먹잔다. 소주가 나오자 B양이 편의점에서 사온 '스크류O'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대로 소주잔에 넣는다. 딸기소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옆에 있던 A군이 '메로O'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이번에는 메론소주다. 딸기소주와 메론소주로 배를 채우고 호프집을 나온 한씨는 후배들에게 조심스레 2차로 노래방을 권해본다. 하지만 후배들의 안색이 금세 어두워진다. 한씨의 회식은 그렇게 끝났다.


/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대한민국의 음주문화가 달라졌다.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며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 들이붓던 과도한 술자리는 사라지고, 간단히 맛있게 먹는 가벼운 술자리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술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나 위스키보다는 와인처럼 도수가 낮은 술이 인기다.

대한민국은 술을 사랑하고 술에 관대하기로 유명하다. 술이 취했을 때 하는 실수는 너그럽게 이해해준다. 오죽하면 "한국인은 모이면 마시고, 취하면 싸우고, 다음날 다시 만나 웃으며 함께 일한다"는 말까지 있을까.


특히 직장의 음주문화는 더욱 유별나다.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라는 말에 빠질 수 없고 상사가 권하는 술은 무조건 마셔야 예의인 게 대한민국 직장의 음주문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술을 잘 마시는 직원은 능력 있는 직원으로 대우받을 수밖에. 심지어 일부회사는 직원을 뽑을 때 입사원서에 주량을 적도록 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 CNN은 '대한민국이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잘할 수 있는 10가지'를 꼽으며 대한민국 직장인의 음주문화를 4위에 올렸다. 부하직원에게 폭탄주를 마시게 하는 상사가 많고 술자리에 빠지면 눈치를 봐야하는 나라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커버스토리] 회식자리 '폭탄주'가 사라진다

◆급하게 먹고 섞어먹는 음주풍조, 변화조짐

사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폭음을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다. 일단 '술 먹는 속도'에선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샷'을 좋아해 적당히 끊어 마시는 법이 없고 한번에 한잔씩 먹다보니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 또 게임 등을 하면서 벌주를 마시기도 하는데 게임은 보통 1분 이내에 끝난다.


'정'에 약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강요'를 받아도 거절하지 못한다. 손윗사람이나 선배, 직장상사가 따라주는 술은 반드시 마셔야 하고 한잔 받았으면 한잔 돌리는 것이 예의다.

아울러 술을 섞어먹는 것, 일명 '폭탄주'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음주문화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폭탄주는 폭음문화를 조장해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냥 마실 때보다 많이 마시게 돼 빨리 취할뿐더러 건강에도 해롭다.


그렇다면 해외의 음주문화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더라도 서로 잔을 권하거나 2차를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취해서 비틀거릴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도 드물다. 술값도 각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미국은 옥외에서 술을 마실 수도 없다. 야구·농구 등 운동경기장에 술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며 심지어 노숙자들도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 술병을 감추고 몰래 마신다. 술 판매도 매우 엄격해 지정업소 외에선 술 판매가 금지돼 있다. 쉽게 술을 살 수 있으며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고 취해 실수하더라도 눈감아주는 국내 음주문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국내 음주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보다는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먹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회식자리도 가벼워졌다. 폭탄주가 줄었고 2·3차도 잘 권하지 않는다. 회식 횟수는 감소한 반면 캠핑 등 가족 레저시장이 커지면서 가정용 맥주와 와인 판매가 늘었다. 특히 독한 술보다는 약하고 맛있는 술, 각자 개성에 맞는 술을 찾다보니 수입맥주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건전한 음주문화 확대를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 음주문화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음주문화 변천사


▲고대국가=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동예의 '무천'·삼한의 '농경의례' 등 각국의 제천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술을 빚어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 초기에는 귀족 중심으로 술을 각자 제조하고 소비하는 형태였다가 후기에는 귀족을 대상으로 술을 판매하는 업소가 생겼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이 생겼다.

▲일제시대~1950년대= 일제시대에는 술의 종류가 개량식 약주와 막걸리, 소주로 획일화됐다. 해방 이후 6·25를 겪으며 미군을 통해 양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60~7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성장 속에서 소주가 대량 공급됐다. 70년대 중반부터는 짧은 시간에 연거푸 술을 마시는 폭주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에 접대문화가 발달하면서 이른바 '폭탄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중주인 막걸리의 소비량은 감소하기 시작한 반면 맥주의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90년대= 90년대 초 '마이카 붐'이 본격화되면서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확산됐다. 직장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여성음주인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