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다. 가격 내리고 판매망도 다양화하고…. 그런데 실적이 안 나온다. 바로 글로벌 자동차 1위 기업인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한국시장 이야기다. 이쯤 되면 토요타로서는 굴욕이다. 토요타는 지난해 아베노믹스의 핵심 축이었던 엔저 정책의 효과에 힘입어 무려 18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국내시장에서는 이상하게도 실적이 악화됐다. 한때 국내 수입차 월간판매 2위까지 달렸지만 최근 몇년 새 미국차 포드에도 밀리면서 7위까지 떨어졌다. 토요타의 프리미엄브랜드 렉서스도 6위에 머물고 있다. 왜 이런 것일까.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토요타 사장 /사진제공=한국토요타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토요타 사장 /사진제공=한국토요타

◆ 엔저 업고 글로벌시장 매출↑, 한국 매출은 계속↓

토요타는 판매대수와 매출액에서도 지난해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998만대를 팔아 2년 연속 왕좌를 지켰다. 특히 영업이익의 향상은 놀랍다. 토요타의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89% 증가한 1조8231억엔(18조333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인 2007회계연도(1조7178억엔) 이후 6년 만에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74% 오른 2조2921억엔(23조494억원)으로 2007회계연도의 2조2703억엔을 넘어섰다. 이 역시 6년 만에 사상 최대치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이 같은 실적 향상에 엔저 효과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판매대수가 전체 자동차업계 상승률인 4.4%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나 일본 본토에서 수출하는 매출액이 크게 증가한 것이 주요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적이 좋지 않다. 딱히 반일 감정이 부각된 것도 아닌데 판매량이 줄고 있다. 한국토요타는 지난 2009년 하반기부터 본격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해 11월 수입차 월간 판매 2위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5위, 6위로 밀리더니 9월 현재는 7위로 뒤처진 상황이다.

◆ 국내시장선 굴욕… 꼬이는 하이브리드 전략

그렇다고 국내시장에서 수입차 업계가 부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수점유율 15%를 돌파하면서 사상 유례 없는 실적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누적기준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총 12만8817대로 전년 동기대비 24.6%나 늘었다.

주요 브랜드별로는 폭스바겐(39.4%)과 아우디(32.5%)가 30% 이상 고속 성장했고, 판매량은 적지만 피아트(288.5%), 인피니티(210.7%)는 지난해 실적 대비 2배 이상 몫을 해내는 등 국내 정식 론칭한 22개 브랜드 중 20개의 판매 실적이 일제히 상승했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업계 1위인 토요타는 지난 8월 누적기준 판매량이 5671대에서 4159대로 26% 감소했다. 이러한 토요타의 부진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유럽 디젤차를 대적할 경쟁 라인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토요타는 디젤 차량은 과감히 버리고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올해 새로 취임한 요시다 아키히사 한국토요타 사장은 “디젤 열풍이 불고 있는 건 맞지만 (토요타는) 하이브리드가 미래 엔진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하이브리드 차종을 추가해 완벽한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시장에서 대세를 굳힌 디젤차의 질주를 막기에는 이 같은 전략은 현실적으로 역부족인 상황.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내에서 팔린 수입 승용차는 12만8817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6% 증가했다. 이중 디젤차는 8만8057대로 40.1% 급증했다. 나머지는 휘발유차 3만6166대, 하이브리차 4524대, 전기차 70대 등이었다.

연간 디젤차 판매대수는 지난 2012년 6만6671대로 휘발유차(5만7845대)를 처음 추월했으며, 이후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 수입차 가운데 디젤차 비중은 2010년 25.4%에서 2011년 35.2%, 2012년 51.0%, 지난해 62.1%, 올해 1∼8월 68.4%로 급증했다. 한국토요타는 이러한 디젤차의 성장에 맞서 캠리와 프리우스 등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대로 국내시장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 가격 내리고 新시장 노리지만… 효과는 ‘글쎄’

이러한 국내시장의 냉랭한 반응에 글로벌 1위 업체의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한국토요타는 다음달 국내시장에 2015년형 신형 캠리를 2000만원대 후반 가격에 출시하는 등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펼칠 예정이다.

토요타의 베스트셀링카 모델인 캠리의 국내 판매 가격은 2010년 3500만원, 2012년 3350만원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번에는 엔저효과를 앞세워 옵션을 제외한 가격 2000만원대 후반대를 검토 중이다. 국내 출시에는 기본 옵션이 장착돼 3000만원대 초·중반이 될 전망이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1위 자동차기업인 토요타가 유독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라며 ”베스트셀링카 모델인 신형 캠리에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가격 할인과 마케팅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캠리가 워낙 토요타를 대표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효과는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디젤차에 대항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한국토요타는 신시장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대표 베스트셀링카인 프리우스를 내세워 국내 택시시장에 뛰어든 것. 사실 프리우스 택시는 싱가포르,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등 전세계 각지에서 인기 있는 택시 차종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유가보조금의 부재와 법인회사와 국내 완성차업체들 간의 파트너십 장벽, 교체 시기 문제 등의 이유로 당분간 시장 진입에는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아직까지 반응은 미미하다. 한국토요타에 따르면 지난 8월20일부터 판매에 들어간 프리우스 택시의 가계약 건수가 이제 막 60대를 넘어섰을 뿐이다. 이에 대해 한국토요타 관계자는 “지금 당장 큰 성과를 바라지는 않는다”며 “프리우스 택시는 수입차 업체가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택시차량이라는 점과 더불어 하이브리드 택시의 첫 포문을 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