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에겐 큰 숙제가 하나 있다. 이승한 전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 홈플러스엔 이 전 회장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유통업계 최장수 CEO’라 불리며 14년간 홈플러스를 이끌어 온 그였기에 그럴 만도 하다. 이 전 회장은 1999년 점포 2개로 대형마트 시장에 뛰어들어 홈플러스를 점포 수 136개, 매출 11조원대 기업으로 키워낸 주인공. 그는 지난해 홈플러스 사령탑을 도 사장에게 위임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8월에는 사내 모든 직위(회장, e파란재단 이사장)를 내려놨다.

#. 도 사장은 이 전 회장이 완전히 물러나자 그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 내려는 듯 했다. 업계에선 이 전 회장이 홈플러스에서 손을 떼게 된 게 도 사장의 작업이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도 사장 입장에선 홈플러스에 ‘도성환’이라는 새로운 색을 입힐 절호의 기회가 온 것. 동시에 본격적인 ‘도성환 체제’ 전환을 의미하는 카드였다. 하지만 이도 잠시. 홈플러스는 계속된 악재로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인 실적 역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도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를 넘어 수술대에 올랐다.

◆ 상생에 둔감한 ‘국감 단골’

“3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꼴찌, 골목상권은 다 죽이면서 고객 사은행사로 수집한 고객정보는 보험사에 팔아먹었죠. 심지어 영국 본사에 지급하는 로열티는 20배로 올려 탈세 의혹까지 받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13일 산업통산자원위원회(이하 산업위) 산업부 국정감사장에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을 향해 던진 날선 말이다. 이 질문은 현재 홈플러스가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도 사장은 국감 단골스타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증인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골목상권 침해 행위 근절과 동반성장 이행을 약속했지만 지난 2011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동반성장 지수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보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1~2013년 홈플러스 동반성장지수 평가 분석 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판촉행사 진행 시 납품 업자와의 공정한 협의 절차 운영 미흡 ▲현금결제율 개선 ▲대금지급기일 단축 등의 항목이 3년 연속 지적됐지만 시정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납품업자 선정 기준 및 절차 ▲매장 내 위치 이동 등과 관련한 기준 절차 ▲공정거래 사전 예방 및 감시시스템 운용 미흡도 최근 2년 연속 지적됐다.

도 사장은 “동반성장을 위한 여러 활동을 했으나 등급이 오르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산업위는 도 사장 스스로 개선의 의지가 낮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도 사장이 편의점사업을 통해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삼는다. 실제 홈플러스는 편의점 ‘홈플러스365’가 변종 SSM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자 간판에서 홈플러스를 떼고 ‘365PLUS’를 다시 선보였다.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의점을 통해 매장확대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홈플러스가 영국 본사 ‘테스코’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도마에 올랐다. 2012년 37억원이었던 로열티 금액이 도 사장 체제에서 20배 늘어 760억원이 된 것. 이 때문에 도 사장이 홈플러스 지급수수료인 로열티를 늘리고 영업이익은 줄여 국내 세금을 적게 내도록 탈세를 도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홈플러스가 불법 고객정보 판매로 100억원의 수익을 올린 사실도 국감에서 지적됐다.


 
국감에 출석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사진=뉴스1 이광호 기자
국감에 출석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사진=뉴스1 이광호 기자

안팎으로 풀어야 할 과제 산적

도 사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적 부진이 악재로 지목됐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보다 4.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0.6%), 롯데마트(2.9%) 모두 실적이 하락한 점을 감안해도 기대 이하의 성적표다. 주력인 홈플러스의 영업이익률이 반토막나기 시작하면서 경영 전반에 허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직원들의 기강은 해이해졌다. 지난 7월에는 경품사기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직원이 경품프로그램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홈플러스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돈을 받고 판 사실이 드러나 신뢰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이후 보인 도 사장의 태도다. 직접 사과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기는 커녕 일부 직원들의 개인비리로 선을 그으면서 빈축을 샀다.

홈플러스 지분 100%를 보유한 영국 테스코 신임대표의 방한도 큰 부담이다. 업계에선 루이스 대표가 곧 도 사장을 비롯한 홈플러스 경영진과 대면해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물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는 인물. 홈플러스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 '이승한 망령'이 고달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 사장은 이 전 회장과 줄곧 비교되고 있다. 홈플러스 사내에선 이 전 회장 체제의 홈플러스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다. 위기 대응이나 경영 능력, 실적 등 모든 면에서 이 전 회장의 홈플러스가 훨씬 나았다는 것. 당초 이 전 회장을 몰아낸 게 도 사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업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부에선 두 사람 사이가 돈독한 것처럼 비춰지지만 홈플러스 내부는 당초 도성환 파와 이승한 파로 나뉘었고, 도성환 파에서 이 전 회장의 큰 약점을 잡고 그를 밀어냈다는 게 업계에 파다한 이야기”라며 “도 사장이 업적이 컸던 이 전 회장을 미뤄낸 뒤 자신의 자리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경영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도 사장이 헤쳐나가야 할 상황은 도약의 시기였던 이승한 회장 시절 때와는 전혀 다르다”며 “여전히 이 전 회장의 그늘 속에서 실마리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향후 도 사장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매출 10조원, 재계 순위 35위로 성장한 홈플러스. 도 사장 취임 1년 반이 지난 지금의 홈플러스는 상생 미비, 실적 부진, 경품 조작 사건 등 잇단 악재로 신음하고 있다. 이는 결국 도 사장의 리더십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금으로선 리더십 위기다. 어찌됐건 홈플러스가 안팎으로 처한 상황을 해결할 책임은 좋건 싫건 도 사장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도 사장이 수술대에 오른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해 나갈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