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의 큰 키에 짧은 커트머리, 진한 립스틱과 세미 스모키 메이크업. 패션 포인트는 빨간 운동화. 외형부터 범상치 않은 그는 패션기업 성주그룹을 이끄는 김성주 회장. 대성그룹 창업주의 막내딸로, 집안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김성주 신화’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0여년 전, 그는 모두의 우려를 딛고 독일 패션브랜드 MCM을 인수해 연간 7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냈다. 명품 마케팅 전략으로 '대박 신화'를 실현한 것. 그에게 붙은 수식어 역시 ‘명품 CEO’였다.

#. 이토록 눈부신 성공을 거둔 김 회장이지만 외환위기 때는 부도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한국 기업 문화에 익숙지 않아 왕따 취급을 받는 등 고비를 겪기도 했다. 최근에는 악재가 한꺼번에 몰렸다. 적십자사 총재 내정에 대한 낙하산 인사, 국감 불참 논란 등의 구설에 이어 집안 문제까지 회자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정적인 여론이 회사와 브랜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 이래저래 '명품 CEO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것은 지난 9월 말, 대한적십자사(한적)의 차기 총재로 선출되면서부터다. 1949년 한적 창립 이래 첫 기업인 출신이자 최연소 총재의 등장이었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구설에 오른 ‘공주님’

그의 선출을 둘러싸고 ‘정치적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나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적 총재를 선임하는 중앙위원회가 인적사항 서류 없이 구두 추천만으로 ‘10분’ 만에 회의를 끝내고 김 회장을 선출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과거 행적도 덩달아 도마에 올랐다. 대선 당시 그가 상대 정당과 후보에 대해 퍼부은 "공산당 같다", "썩고 불쾌한 당" 등의 막말이 다시 회자된 것. 이런 사례를 들어 김 회장이 기본 인성과 자질이 ‘인도, 공평, 봉사, 중립, 독립’의 적십자정신을 실천하는 총재의 자리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회장이 지난 5년간 적십자회비를 단 한번도 내지 않은 사실도 추가적인 문제로 거론됐다. 김 회장은 총재 선출 후 뒤늦게 특별 회비로 100만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 노조에서는 그의 퇴출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김 회장이 성주그룹 직원을 적십자사 총재 비서실에 상주하게 하면서 적십자사의 인사 자료, 병원 운영 상황, 적십자 회비 모금, 혈액사업 자료 등을 요구·열람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란의 정점을 찍은 것은 국정감사다. 그가 지난 10월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보다 이틀 앞선 21일 중국 출장 등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비행기를 타버린 것. 이에 정치권에서는 국감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성 출국'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

나흘 늦은 27일, 국감장에 지각 출석한 김 회장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대국민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공인이 돼본 적 없이 기업인으로 살다보니 생각이 짧았다”, “공부한 것이 국제정치학이라 잘 몰랐다” 등의 황당한 변명을 늘어놔 또 한번 물의를 일으켰다.

◆독일 MCM 향방은?

잇단 구설로 김 회장 일가의 치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에너지기업인 대성그룹 창업주 고 김수근 회장의 3남3녀 중 막내딸. 산업은행 국정감사를 통해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이 대성산업에 4000억원 특혜 대출을 해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김 회장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정치적 보은 대출’이라는 집안 비리 의혹으로 퍼져나갔다.

이쯤되니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정적인 여론과 논란이 향후 성주그룹과 MCM브랜드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김 회장은 지난 2005년 당시 쓰러져가던 독일 명품브랜드 MCM을 과감히 인수해 연간 7000억원대 매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MCM은 중국은 물론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35개국 3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MCM의 국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국내 명품브랜드로 꼽힌 MCM의 국내 매출은 갈수록 하락 추세. A백화점의 MCM매출 신장률을 보면 지난 2011년 12%에서 2012년 –6%로 돌아서더니 지난해에는 두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다른 백화점의 상황도 마찬가지. 2011년 19.6% 달했던 매출은 2012년 1.7%로 하락했고 지난해 역시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구태의연한 ‘로고 플레이’로 국내 소비자들의 감성을 읽지 못한 데다 모호한 MCM의 정체성, 가격 대비 품질 논란 등으로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패션업게 한 관계자는 “MCM이 김 회장 손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MCM하면 여전히 국적불명 브랜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어떤 자리에서는 한국브랜드로, 어떤 자리에서는 독일브랜드로 모습을 바꾸는 ‘명품’이 세계에 MCM 말고 또 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성주그룹을 루이비통에 버금가는, 오는 2020년까지 매출 2조원대 패션업체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적 총재로서도 그는 “봉사할 기회를 달라. (임기 3년동안) 열심히 일하겠다”고 답변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김 회장 스스로 '명품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큰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한 길을 가는 진짜 명품들의 공통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

김 회장 자신이 밝힌 것처럼 그는 지난 10년간 ‘1인 100역’을 소화하느라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완벽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사이 MCM과 김 회장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데 있다. 그의 한적 총재 직함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